흔들려야 피는 꽃
흔들려야 피는 꽃
  • 승인 2019.06.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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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지난 한 주는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국회는 여전히 국민의 민생을 담보로 각 당의 명분을 위한 소모전을 치르고 있었고, 국내외 사고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외교부 발표 에 따르면 헝가리 유람선사고는 1시간의 투어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던 밤 9시 5분쯤 일어났다고 한다. 허블레아니호가 부다페스트 시내 다뉴브강 선착장을 출발한 것은 현지 시각 29일 밤 8시쯤이었다. 헝가리 의회가 있는 코서스 광장 부근 머르기트 다리에서 3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허블레아니 뒤편에서 달려오던 5배나 큰 스위스 국적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Viking Sigyn)’호가 허블레아니 후미를 추돌했다. 선착장에서 수백m 떨어진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한국인 관광객 30명, 여행사 직원 1명, 가이드 1명, 사진작가 1명 등 한국인 33명과 헝가리인 선장과 직원 등 총 35명이 타고 있었다.

헝가리 경찰은 30일 “유람선이 충돌한 직후 선체가 기울어지며 7초 만에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헝가리 경찰은 사고 상황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며 침몰한 허블레아니호와 바이킹 시긴호가 나란히 북쪽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허블레아니호가 갑자기 방향을 틀면서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헝가리 방송사들은 “승객들이 보통 2층 갑판에 나와 야경을 감상하지만 사고 당시는 비를 피해 1층 실내에 들어가 있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커졌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수온은 10~12℃로 체온보다 아주 낮았다. 그날 요한 시트라우스가 보여준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은 없었다.

영어로는 다뉴브(Danube)로 불리지만, 도나우(독일), 두나이(체코), 두나(헝가리), 두나브(불가리아), 두너레아(루마니아)로 나라마다 달리 불린다. 모두 라틴어 두나비우스에서 나온 이름이다. 조지프 이바노비치의 작품 중 다뉴브강의 잔물결(Donauwellen Walzer)이란 A단조의 곡이 있다. 이번 사고선박의 이름인 허블레아니의 뜻은 공교롭게도 인어(mermaid)다. 유럽에서 인어는 폭풍의 징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추돌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선박의 이름인 바이킹 시긴(Sigyn)의 뜻은 호우(豪雨) 뒤에 물이 넘치는 도랑이라는 의미다.

물론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은 전혀 없지만, 하필이면 선명(船名)조차 스산하냐고 시비를 걸고 싶은 이름이다. 강풍과 폭우로 인해서 구조 활동이 여의치 않다는 현지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온 국민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어린 딸을 돌봐준 부모님을 여행 보내드린 딸이 있는가 하면, 남매가 승선했다가 누나만 구조되기도 했다. 새로 마련한 집이 너무 좋다면서 한 달 넘게 손수 집을 꾸미며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웃던 아내를 홀로 떠나보냈다고,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한 남편도 있었다.

1일 실종자를 찾고 있는 한국 및 헝가리의 수색팀은 일단 오는 2일까지 수중작업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유속이 너무 빨라 다이버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측 심해잠수부와 헝가리와의 합동수색도 일단 중단됐다. 이날 헝가리 다이버들이 수색을 벌였지만, 거센 물살에 물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다가 수압에 산소탱크 연결선이 터져 위험한 상황도 발생했다고 한다. 세월호 수색경험이 있는 해군(7명)·해경(6명)·소방(12명) 등 우리 신속대응팀은 선체 내부까지 수색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논의 끝에 결국 잠정 중단을 결정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오는 3일 오전 7시 헝가리 정부와 수중수색 방안을 재논의 한다”며 “그 전까지 한국 구조대는 보트를 이용해 수상 수색을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현장상황에 따라 수색작업이 지연될수록 가족들과 국민들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에 이어 31일 오전 5시 56분께 부안군 위도 북쪽 9㎞ 해상에서 7.93t급 어선(덕진호)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원 구조되었으나, 그 중 3명은 병원으로 옮긴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서 결국 사망하고, 베트남 국적 A씨만 생존했다. 사고 당시 풍속은 강하지 않았고 해역에는 암초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경은 어선 추진기(스크루)에 폐로프가 감겨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헝가리 선박사고가 난 당일, 한강에서 운항 중이던 여객선도 좌초된 사고가 발생했다. 오후 6시 4분께 동작대교 아래를 지나던 여객선 ‘로얄크루즈’가 모래턱에 걸려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구조를 요청했다. 승객 23명과 승무원 3명 등 탑승하고 있던 26명을 모두 구조했다. 당시 전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고, 안전수칙도 비교적 잘 지켜졌고, 부상자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화 ‘허드슨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US AIRWAYS 1549편 불시착 사고’는 2009년 1월 15일에 발생했다.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하여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사고인데, 승무원들의 신속한 대처능력이 전원구조라는 기적을 이룬 감동적인 내용이다. 헝가리 곳곳에는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촛불과 추모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서툴게 그려진 태극기 옆에 이렇게 쓰인 문구도 보인다. ‘꽃은 수천만의 흔들림이 있어야 필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올라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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