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이 검은 가죽 지갑을 열고 나와
내 지갑 속으로 들어옵니다
반짝이던 내 지갑이 더욱 반짝이는 걸 보니
반가운 인연인가 봅니다
당신의 직함과 이력, 전화번호, 팩스, 이메일
압착되었던 방문이 열리고
당신은 우연이라는 말로 브리핑을 마감하는군요
찢어지지 않는 특수 재질의 코팅 앞에서
내 손아귀는 빠르게 절망하는 법을 배웁니다
오래 두면 캄캄할 것 같은 지갑 속에서
황금빛 배경을 가진 그대 이름 세 글자
내게 무슨 소용이 될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간택된 순간 당신의 손을
서랍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서랍이라는 감옥에서 얼마나 더 머물다가
어디로 떠날지는 나도 모릅니다
◇김정아= 경북 상주출생, 대구시인협회 회원, 형상시학회원, 문장작가회원, 시인시대편집위원
<해설> 만남이라는 우연들 속에서 서로를 각인시키고자 주고받는 것이 명함입니다. 잊지 말라는 부탁이겠고, 기억하겠다는 무언의 암시이기도 하지요. 그 흔한 일상을 시인이기에 참 맛깔스럽게 장식해 놓았네요. 그렇게 서로의 주머니를 탐닉하며 엮여 사는 것도 우리가 즐겁게 살아 숨 쉬는 일일 것입니다. -정광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