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잡초
  • 승인 2019.06.1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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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 연구소장
1970년대 초반, 가수 나훈아와 남진, 이 두 라이벌의 한판 대결로 가요계는 뜨거웠다. 언론은 두 사람의 대결을 부추겼고, 대중은 그들의 노래와 이야기에 흥분을 했다. 남진이 온실에서 가꾸어져 자라온 보기 좋은 꽃이었다면 나훈아는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 생명을 이어온 잡초 같은 존재였다. 대중은 귀공자 스타일의 남진도 좋아했지만 잡초 같이 질긴 삶을 살아온 나훈아에게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잡초라는 노래를 부른 나훈아는 그야말로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

잡초의 생명력은 참으로 질기다. 돌보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어디서든 잘 자란다. 그런 잡초의 습성 때문에 농사꾼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잡초와 씨름을 해야 한다. 필자도 몇 해 전 포도 농사를 지으면서 잡초 때문에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어른들이 ‘농사에 때가 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잡초 때문에 알게 되었고, 뙤약볕 생고생 후에 깨닫게 되었다.

봄이 되니 포도의 새순이 가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에 맞춰 바닥에서는 작은 새싹들이 함께 고개를 내밀었다. 잡초였다. 그런데 그때 바로 뽑지 않았다. 아직 작은 새싹 수준이었기도 했고 ‘네 까짓 게’라고 잡초를 만만하게 생각한 탓이기도 했다. ‘언젠가 뽑으면 되지’ ‘날 잡아서 제초제를 한 번 사악~ 뿌리면 되지 뭐’하며 차일피일 미루던 탓에 포토 밭에는 잡초가 가득했다. 그렇게 포도밭에 잡초가 자라는 걸 허락한(방치한) 나의 안일함의 대가는 매우 컸다. 왜 진즉에 뽑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해야 했고, 포도밭을 뒤덮은 잡초를 제거하느라 한 여름 뙤약볕에서 생고생을 해야 했다. 정말 간단하게 잡초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못했다.

잡초가 손가락 마디만큼 자랄 때 그때 손으로 쏙쏙 뽑아주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를 놓쳐 버렸다. 그러다가 발목까지 자랐고, 급기야 무릎까지 자라고 나서야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역부족이었다. 뿌리가 흙을 단단히 붙들고 있던 탓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고, 제초제도 소용없었다. 최후의 보루, 1년에 한 번만 등판하는 구원투수 예초기를 창고에서 끄집어내었다. 한 여름 포도밭에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했다. 이웃 포도밭에서 놀라서 달려왔다. 산소에서나 들려야 할 예초기 돌아가는 시끄러운 소리가 포도밭에 들리다니, 충분히 놀랄 만했다. 부끄러웠다.

잡초가 잘려나가면서 잡초의 잎과 단단한 줄기가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다 큰 포도 알에 박히기도 했고, 심지어 포도나무 밑 둥을 ‘댕강’ 잘라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도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잘려나간 포도나무가 꽤나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 1의 노력으로 충분한 효과를 볼 수도 있었는데 100의 수고로움을 통해서도 제대로 된 효과를 보지 못한 꼴이 되었다. 작은 싹일 때 그때 손쉽게 손으로 뽑아 버렸다면 금방 뽑혔을 잡초를 오랫동안 방치해 둔 탓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우리 속에 잡초가 자란다. 그 잡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가만히 두어도 부정은 알아서 싹을 틔우고 잎이 무성해진다. 노력하여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는 우리 속의 잡초. 부정의 싹을 애당초 작은 싹일 때 뽑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방치해두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라 버린다. 우울이라는 잡초, 갈등의 잡초 애초에 뽑아내야 한다. 뒷짐 지고 내팽겨 쳐놓고 있다가 도저히 감당 안 될 때 그때 뽑으려 하지 말고 때 맞춰 뽑아내자.

그런데 요즘엔, 가만히 놔둬도 막 자라는 잡초를 가꾸고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큰일이다. 저러다가 삶이 잡초로 가득 찰게 불 보듯 뻔한데. 어쩌자고 잡초에다가 물을 주고 가꾸고 있을까. 농사에도 때가 있듯, 우리 삶에도 때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잡초를 뽑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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