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줍다 전과자 전락…안타까운 노인들
고물 줍다 전과자 전락…안타까운 노인들
  • 한지연
  • 승인 2019.06.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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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지역 곳곳 절도범죄 ‘속출’
범죄인식 부족한 생계형 노인
공사현장 철근파이프 가져가고
집주변 신발·옷 등 잡물 훔쳐
북부경찰서, 전과자 양산 예방
의식 개선 ‘클린 고물상’ 운영
고물상2
지난 25일 오전 대구 북구의 한 고물상에서 수레에 담긴 고물들의 무게 측정이 이뤄지고 있다. 한지연기자

‘빵모자’, ‘십자가 할매’, ‘별 할매’, ‘고물 딸래미’, ‘머리 할매’ 등등. 대구 북구 ㅊ고물상 장부에 담긴 고물수집인의 별칭들이다. 이름을 알리기 꺼려하는 고물수집인은 고물상 업주들에게 외형이나 특성에 따라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베레모를 즐겨 쓰는 어르신은 빵모자, 교회를 다니는 어르신은 십자가 할매, 유별나다고 알려진 할머니는 별 할매라고 일컬어지는 등이다. 고물을 함께 모으는 모녀 중 자식에게는 고물 딸래미라는 별칭이, 머리 모양이 특이한 어르신에게는 머리 할매라는 별칭이 있다.

지난 25일 오전 10시께 대구 북구 ㄱ고물상에서는 입구 바닥에서부터 깔린 커다란 철판 위로 종이박스 등이 한 가득 실린 수레가 올라갔다. 지역 내 한 대형마트와 몇몇 소규모 상점 등을 ‘담당’한다는 수레 주인 A(여·77)씨는 상가와 가정집 등을 돌며 택배박스를 비롯한 종이박스와 신문 등을 받고 있다.

고물상 바닥의 철판은 무게 측정 정밀계기로 속칭 ‘계근다이(계근대)’라고 불린다. 해당 기계를 통해 무게가 측정되면 25일 기준으로 철물이나 고철은 1kg당 200~210원, 의류 1kg 200원, 박스 및 파지 1kg당 60원, 신문 1kg당 70원, 구리 1kg당 2천500~5천900원, 알루미늄캔은 1kg당 600원 등의 시가로 계산이 치러진다.

고물수집인은 수집한 고물로 용돈벌이를 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고물, 저 고물을 수집하다보면 주인이 있는 물건들이 수레 안으로 딸려 들어가기도 한다.

대학 원룸 인근에서는 빨래 후 말려 두기 위해 집 밖에 세워둔 신발이 없어지기도 하고, 공사장에서는 인부들이 두고 간 못이나 철 조각, 공구, 그라인더 등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달 12일 고물수집인 B(60)씨는 대구 북구 복현동 한 공사 현장에 놓인 시가 불상의 철근파이프 5개를 수레에 싣고 갔으며, 지난달 24일 C(77)씨는 대구 북구 산격동 한 대학교 주차장에 있던 3만5천원 상당의 공병 75병을 고물상에 넘긴 바 있다. 생계비 충당을 위해 버려졌다고 판단한 공병이나 철근파이프를 가져간 것이었지만, 모두 주인이 있는 물건들이었다.

ㅊ고물상 업주 D씨는 “고물상을 찾는 대부분이 60대 중반에서 80대 중반 정도의 연령으로 90% 어르신은 글자를 모르신다”면서 “길가에 내놓거나 쌓아둔 물건이 있으면 주인이 없겠거니 하고 들고 와 고물업주는 ‘장물범’이 되고, 고물을 주워온 어르신도 범죄자가 되는 셈”이라며 장물행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 한해 동안 대구지역에서는 널어놓은 옷 절도, 집주변 잡물 절도 등 생계형범죄를 포함해 8천180건의 절도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부족한 범죄인식으로 인해 절도를 저지른 노인이 일부 있었으며, 비교적 소액이라는 이유로 신고 접수되지 않아 통계에 들어가지 않은 건수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물 수집인 E(여·72)씨는 “길가에 물건이 있으니 주워가도 되겠구나 싶어 고물상에 가져다 파는 것”이라며 “동네 할배 한 명이 고물을 주웠다가 도둑놈이 될 뻔했는데,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대구 북부경찰서는 이달 11일부터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주차장이나 대문 앞에 잠시 둔 생활물품을 무분별하게 가져가는 생계형 고물수집인의 생계형절도 예방에 나섰다. ‘훔친 물건은 사지도 팔지도 않습니다. 노상물품을 가져가는 행위는 범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경찰특별순찰구역 스티커와 클린고물상 인증판을 부착하고 ‘클린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다. 임대철 북부경찰서 생활안전계장은 “생계를 위한 고물수집으로 절도를 저지르게 되신 어르신을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참 많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신고 접수가 들어오면 피해자 입장도 헤아려야 한다”며 “절도와 장물매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이번 클린고물상 운영으로 전과자 양산을 예방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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