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 형식을 취한 존재의 관계망
부조 형식을 취한 존재의 관계망
  • 서영옥
  • 승인 2019.07.15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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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최영일
도자공예·귀얄기법·스핀 페인팅 등
다양한 기법 통해 동서양 융합 시도
관계맺기_flower
‘관계맺기(flower)’


시는 흥취(興趣)의 표현이라고 한다. 흥취는 사물이나 현상에 감동할 때 일어난다. 흥취를 언어로 나타내면 시가 되고 조형성을 부가하면 그림이 된다. 당송팔대가였던 소식(蘇軾-소동파)은 시와 그림의 합일을 얘기한다.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가 그것이다.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王維)의 그림을 평하면서 한 말이다. 그 후 ‘시중유화 화중유시(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동양화의 주요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전통 동양화에서는 시(詩)와 화(畵)를 분리하지 않는다.

시와 화의 접점은 눈에 비치는 것 너머를 표현하고자한 예술가의 욕구와 맞물린다. 한 폭의 그림에 시각적 만족 이상의 의미가 담겨지는 지점이다. 전통 동양화에서는 화(畵)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이며 평가의 기준이다. 다원화된 현대에도 ‘화중유시’는 유효하다. 동양화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화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작가 최영일도 그 부류에 속한다. 최영일의 전통회화에 대한 현대적 표현방법 모색은 10여 년간 꾸준하다.

20여 년 전 경북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최영일은 지금까지(2019년) 10회의 개인전과 12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2년에 발표한 석사 논문 ‘비교법을 통한 미술 감상 지도’는 그의 교육관과 예술관을 동시에 비추어준다. 현재 대구서부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이력 또한 화업과 밀착되기에 간과할 수 없다. 스승은 자신의 인품으로 제자들을 감동시킨다.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여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적성을 발견해 꿈의 실현을 앞당겨주기도 하고, 몇 마디의 말로 예술적 영감을 깨워주기도 한다. 탁상공론식 교육보다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는 이상적인 교육을 실천하기도 한다. 작가 최영일이 그렇다.
 
'관계맺기'
'관계맺기'

 


“나는 운 좋게 그림을 전공하였고, 지금도 작업에 몰입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최영일의 작업일기) 더하여 그는 인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미술교사이다. 그가 대구시 교육청 학부모 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에서 ‘인문적 활동과 통찰이 요구되는 융합의 시대’ 라고 피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술교사로서는 이례적인 활동이며 작업과 연계된 교육실천의 일환이다. 모두 최영일의 예술관을 관통하는 단서이기에 주목된다.

“나의 일상은 관계맺기의 연속이다.”(최영일의 작업일기) 최영일의 관계맺기는 몇 차례 작업방식의 변모를 보여주었다. 첫 번째는 평면에 공간을 부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겹겹이 누른 닥(한지의 원료)의 압축이 반 입체적인 부조로 드러나면 그 위에 전통 도자공예기법으로 분청을 올려 밋밋한 표면에 촉각적 질감을 획득한다. 전통 목조건축물에서 차용한 꽃창살 무늬를 투각하고 종이에 지지대를 세워 높이를 더하면 한 단계의 공간이 더 추가된다.

최영일의 관계맺기 두 번째(2013년) 작업방식은 분청사기의 귀얄기법과 조화(彫畵)기법을 도자판에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긋고 긁고 새기고 칠하는 복합적인 기법은 ‘그리다’와 ‘긋다’, ‘긁다’의 관계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이 ‘쓰다(書), 그리다(畵), 새기다(劃)’로 이어지는데, 일관된 자형의 相似性(상사성)에서 방식과 의미의 동질성이 포착된다. 즉 그의 다양한 작업방식은 결국 작업관인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을 증명한 셈이다.

 
관계맺기_39
‘관계맺기’



세 번째 시도는 조형의 틀을 벗어나 조형의 본질인 선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킨다. 내재된 문학적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시적(詩的) 통로를 연 것이 시(詩)와 화(畵)의 합일로 드러났다. 바로 현대적 문인화로서의 가능성을 점친 시점이며 진지하게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를 실천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방법적으로는 Spin Painting 기법을 수용했다. 캔버스를 회전시키면서 그 위에 물감을 뿌려 문자를 드러내는 Spin Painting 방식은 현재 진행형이며 동양과 서양화법의 융합이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고 볼 때 다양한 방식에도 불구하고 최영일의 작업은 ‘관계맺기’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가 동양 사유의 근간인 ‘관계’를 작업으로 끌어들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교사에게는 사명과도 같은 교육철학이 예술철학과 만난 것이다. ‘세상은 음(陰)과 양(陽)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만물은 오행(五行)의 역학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서로간의 관계는 인드라망처럼 연결된 구조라는 사유가 최영일의 ’관계맺기‘ 작업의 밑바탕이다. 전통회화의 현대적 표현이라는 물음에서부터 평면의 해체에 이어 여백餘白에 물리적 공간을 부여하는 일련의 공간 확장의 시도는 ‘관계’라는 핵심적인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다.

최영일의 초기작을 보면 자연과 인간을 모티브로 한 도상들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이기에 하나라도 끊어지면 화면은 힘을 잃고 무너진다. 하나의 존재는 독립된 존재이나 결국 서로간의 관계망 속에서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것이 최영일의 생각이다. 작가가 공간의 형식미를 추구하며 ‘관계맺기’라는 작업에 몰입하는 것은 결국 그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방식이자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지난 2013년에 연 최영일의 개인전에 부친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관계맺기-긁다, 긋다, 그리다-LOVE'
'관계맺기-긁다, 긋다, 그리다-LOVE'

 

‘이러한 최영일의 작품은 고운 색과 섬섬옥수(纖纖玉手)의 섬세한 문양이 더해져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옥의 문살을 연상시키는 투각된 선은 유연하고 공예의 정교함까지 두루 갖추었다. (중략) 나무의 견고함을 닮은 표면의 질감은 켜켜이 쌓은 한지와 물감의 하모니다. 작업방식은 하이테크 디지털시대답지 않게 아날로그식이다. 시종일 수작업에 기대어야하는 전통방식은 긴 시간의 노동을 요한다. 그 수고로움이 작가의 손맛과 어우러져 재료가 가진 본래의 느낌을 넘어선다. (중략) 이러한 그의 작업과정에는 느림의 미학이 서려있다. 느림은 들뜬 세상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그 가운데 재료의 결도 무르익는다. 농익은 결의 자연스러움이 작품의 재료와 작업방식을 모두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작업의 과정이 완성작의 연장선임을 재확인시켜준다. 이것은 오랫동안 ‘전통 회화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탐색해온 작가의 수고와 노력의 일환이다. (중략)

최영일의 작업은 맺고 풀기의 연속이다. 떠났다가 돌아올 여행처럼, 왔다가 다시 떠날 인생처럼, 때로는 성장의 마디로, 또는 진통의 매듭으로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는 삶을 맺고 푼다. 이어진 고리마다 세상이 담겨진다. 개체는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사연으로 엮이고 이어져 하나로 뭉쳐진다. 그것이 자연이건 인공물이건 그의 공간에서는 하나가 된다. 도덕경 4장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나온다. 빛이 부드러워져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깨친 사람들이 고고하게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빛을 부드럽게 함으로써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것처럼 최영일의 작품도 하나 됨을 품는다. 작가가 보는 세상은 평면인 듯 공간이다. 공간 속의 관계다. 디디고 선 이 공간의 하루가 무미건조해도 훗날 보면 그저 그런 무색무취만일까. 남겼던 그대로의 삶이 아닌 추억으로 가공된 의미를 예술은 기록하고 표상한다. 가장 혹독했던 시절마저 열정 가득한 추억(또는 기억)으로 남긴 고호의 예술처럼, 봄날 만개한 벚꽃 길에 소풍 나온 아이처럼 예술은 공간과 관계 속에 피어나는 삶을 기록한다. 예술로 따뜻해질 세상이라면 삶의 유대감을 형성할 일이다. 기억이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의 질이 삶의 질이 될 관계를 소홀히 할 순 없다. 힘을 다해 사랑하는 수밖에. 최영일 작가가 새기는 우주의 결, 삶의 공간, 관계의 망처럼. (2013년, 서영옥)

작가는 이제 시와 그림의 합일로 조화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한다. 조금 느릴지라도 그 조화의 빛이 학교와 화단에서 두루 빛을 발할 것이라 기대한다. 미술학 박사 shunna95@naver.com


 
최영일_사진
 
△최영일=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및 동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개인전 및 개인부스전 10회를 열었다. Art Beijing, 서울오픈아트페어(2016) 외 국내외 아트페어 다수 참가했다. 한국화 동질성전, 봉산미술제 초대작가전 등 120여회 단체전에 참가했다.그의 작품은 정부미술은행, 원주한지문화원, 대구교육해양수련원 등에 소장돼 있다. 현대 한국미협, 우리그림회, 대구구상작가회, 중등미협, 대구서부고등학교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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