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글과 같은 사람
권정생, 글과 같은 사람
  • 승인 2019.07.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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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글과 사람의 삶이 똑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할 때 글이, 그 글을 쓴 작가가 멋있게 느껴진다. 입으로, 글로 하는 내용과 삶이 아주 다르거나 반대일 때 글이 그저 기교나 기술로 보인다. 어떤 책을 읽고 나면 꼭 그의 약력을 찾아보는 버릇이 있다. 글을 쓴 내용과 그의 삶의 궤적을 비교해 보는 버릇이다. 글과 비슷한 행적을 발견하면 글을 신뢰하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글의 내용을 불신하게 된다. 흑백논리처럼 굳이 따질필요가 없는데도 홍희는 글을 읽고나면 작가의 생애와 삶을 뒤져보는 버릇이 있다. 언행이 일치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포인트다. 자신은 언제나 언행일치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한 시집을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농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던 감성과 많이 닮은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인이 쓴 사랑에 관한 시집도 좋아했었다. 아직 첫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랑을 시를 통해 느꼈다. 순수하고 달콤하면서도 그리운 사랑의 냄새가 콧끝에서 맴돌았다. 시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느꼈을 시인의 사랑이 부러웠다.

시인을 찾아가는 문학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곳은 시에서 본 것처럼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맑은 강이 있었다. 동네앞 개울에는 다슬기가 돌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물은 깨끗하고 시원했다. 같이 간 사람들과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다녔다. 여름방학에 외갓집에 온 것처럼 신났다. 큰 느티나무 아래에 모여 시인과 이야기를 했다. 시인이 이런 저런 말을 했고, 같이 간 사람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홍희도 질문을 했다. 시같은 사랑을 해보셨냐고, 그게 누구냐교? 첫사랑이었다. 또는 지금 현재의 부인이다 그 어떤 대답을 해도 괜찮을 거 같았지만 그 대답은 현실에서 대상은 없었다고 했다. 시인의 감성으로 쓴 시라고 했던 것 같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만든 시라고 했다. 그래 시가 꼭 현실일 수는 없다. 실제 경험에서 꼭 시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실제 경험한 것보다 더 사실적이고 감정을 극대화하여 시를 쓸 수 있다. 실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실제 경험이 있을 것처럼 착각하도록 시를 쓴 시인이 더 훌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거짓으로 쓴 감정을 진실로 믿고 마음을 뺐긴것같은 배신감을 느꼈다. 이후 그가 쓴 시는 읽지 않았다.

권정생은 일본 빈민가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져 어려서부터 나무장수와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으로 힘겹게 생활하였다. 객지를 떠돌면서 결핵과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병고에 시달렸으며, 1967년 경북 안동에 정착하여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강아지똥'으로 동화작가의 삶을 시작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에도 교회 뒤편의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에서 혼자 살면서 작품 생활을 하였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하다. 강아지똥이라는 한낱 미물이 민들레 꽃을 피워내는 데 소중한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권정생은 삶이 그의 글에 녹아있는 것 같다. 그처럼 아프고, 힘들고, 외롭게 살면서 글을 쓰는 것이 작가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고 그렇게 살 수도 없다. 힘없고 약하지만, 쓸모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그린 그의 작품속 인물처럼 그의 삶도 흙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나 많은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하다가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경험을 한 권정생의 삶이 그의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글을 읽는이에게 전해지는 감동이 큰 것 같다. 권정생의 글을 읽으면 하찮아 보이는 나를 사랑하게 되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삶과 같은 작품을 썼다. 권정생은 글과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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