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한글 창제 정설을 뒤집은 불편한 가설
'나랏말싸미' 한글 창제 정설을 뒤집은 불편한 가설
  • 배수경
  • 승인 2019.07.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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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인물 승려 ‘신미’의 등장
세종·집현전 학자들 역할 미미
“단순 영화”vs“역사 왜곡” 팽팽
아름다운 문화유산의 사계 담아
소헌왕후의 모습 유독 가슴시려
나랏말싸미-스님
 

영화 ‘나랏말싸미’는 기우제를 드리는 세종과 신하의 모습으로 시작이 된다. 한자로 된 축문을 읽는 신하에게 세종은 “이 땅의 신이 알아듣겠나, 우리말로 하거라”라며 화를 낸다.

일년에 한 번 한글날이나 되면 그 소중함을 되새겨 볼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듯이 쓰고 있는 우리의 글, 영화는 한글이 없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글을 만든 사람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라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겠냐 싶지만 ‘나랏말싸미’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제 3의 인물, 신미를 등장시킨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서문 108글자의 첫 단어를 제목으로 택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을 한다. 문자가 권력의 가진 이들의 기득권을 더욱 탄탄하게 하는 도구로 여겨질 때 세종(송강호)은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가 필요했다. 세종의 소망이 벽에 부딪쳐 좌절할 때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등에 능통하고 팔만대장경 속에 깃든 소리의 원리까지 꿰뚫고 있는 신미가 나타난다. 그 후 신미와 그의 도반들, 그리고 세종의 아들 수양과 양평이 주축이 되어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완성해 나간다. 그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다.그러나 이쯤되면 한글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나랏말싸미-세종
 

백성들을 위해 글을 만든 세종의 업적에 대해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지만 영화 속 세종은 누구나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한글을 만들고자 하는 뜻만 내놓을 뿐 한글 창제 과정은 대부분 신미와 그의 도반들이 담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집현전 학자들의 역할은 더더욱 미미하다. 유교의 나라에서 승려가 한글창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역사 속에서 신미를 지워버린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설(說)에 불과한 것일까.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라는 자막으로 모든 논란을 피해가기에는 어려울 듯 보인다.

물론 한글은 물론 세종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글이 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라져버리지 않고 퍼져나가게 된 것도 누구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설로 알고 있던 사실이 흔들릴 때 불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 임금과 숭유억불 정책하에서 개와 같은 취급을 받던 승려가 마주앉아 한글을 만들어가는 모습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외양은 사극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신미와 대신들이 임금을 대하는 태도나 말투는 그간 보아오던 사극의 그것과는 달라 낯설게 느껴진다.

영화의 여러 논란과는 별개로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경복궁 근정전, 안동 봉정사 등을 배경으로 촬영한 우리나라의 사계는 아름답다.

 

나랏말싸미-왕후
 

영화 속 표현을 빌자면 ‘두 졸장부’, 세종과 신미를 화해시키는 ‘대장부’ 소헌왕후(전미선)가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날 수양의 등에 업혀 마지막을 맞는 모습과 그녀의 진혼제 장면이 유난히 가슴 시리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개봉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그녀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영화 개봉후 관객들의 평은 극과 극으로 나눠진다. ‘영화는 영화다’와 ‘역사왜곡’이라는 평이 팽팽하게 맞선다. 130억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가 아쉬운 것은 새로운 가설은 신선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간간히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있지만 재미나 감동 어느 것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한 역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나온 느낌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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