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
  • 승인 2019.07.3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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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ㆍ수필가​
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ㆍ수필가​

한국 날씨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예상과 달랐다. 지중해성 기후다. 나무 숲도 강줄기도 보이지 않는다. 황색의 땅, 열기와 바람으로 가공된 사암들이 즐비한 신의 땅은 오랜 풍상을 겪고도 빛나고 있었다. 편도 14시간의 비행길은 쉽지가 않다.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가는 성지순례길이다. 성지순례, 오랫동안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지만 실행이 어려웠다. 나이를 계산하면서 용기를 내었다.

기독교의 성지는 중동 여러 나라와 유럽 전역에 퍼져있어 성지의 개념을 잡기가 여의치 않지만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요르단은 아주 생소했다. 가는 족족 마을과 사람들이 우리가 어렵게 산 그 때를 닮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진 페트라를 찾았다. 사위가 온통 가늠할 수 없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마차 한 두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통로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 2천수백년 전 외세에 쫓겨 살던 유목민들이 만든 요람지가 있다. 관광객들이 탄 마차가 획획 지나가면 누런 먼지가 일었지만 비포장 자연 그대로가 좋다. 바윗길에 갇혀 위로 탁 트인 하늘을 보니 여기저기에 구름 꽃이 피어있다. 가는 길 틈틈 여러 형상의 바위산에는 시커먼 큰 구멍들이 보인다. 옛사람의 주거지와 무덤이란다. 30여분 넘게 걸었을까 큰 광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 핵심자리다. 이곳 건물들은 바위산을 깎아 만들었고 좁은 통로와 수많은 협곡이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사막지대의 산이 작은 동산과 같이 보이는 것은 세월을 이긴 흔적이다.

광장 중심에 자리 잡은 알카즈네 신전(왕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은 사방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 큰 바위산 건물이다. 권력의 힘과 인간의 무한한 능력, 땀, 울분, 한숨, 눈물이 한데 버물려 만들어진 걸작 품은 천년의 겁을 몇 번 겹쳐서도 웅장하고 그대로다. 바위를 떡 주무르듯 했던 옛 사람의 기술과 모습을 그려본다. 8천여 개나 되는 야외극장의 좌석은 바위에 홈을 파서 만들었다. 곳곳 바위 틈새로 이름 모를 키 작은 잡초 같은 것들이 보인다. 생명의 끈질김에 끌려 사진을 찍는다.

사해 입구 매점 간판에서 ‘당신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낮은 땅에 왔습니다’고 쓰여 있는 글귀를 보면서 네델란드를 떠 올린다. 물에 뜬다는 소금바다에 들어가 체험을 해 본다. 기독교성지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백미다. 요르단의 국경을 벗어나니 완전 별 세상이다. 왕국인 요르단의 GNP가 이스라엘의 10분의1 수준이라 국가 간 빈부의 격차가 두드러진다.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딱딱한 얼굴로 사람들을 주시한다. 가끔 여군들도 보인다. 말로만 듣던 중동의 위협을 느낀다. 

 

이스라엘은 여러 종교 색을 띈 민족들이 동거하면서 만들어진 나라다. 수천 년간 종교적 갈등을 잘 소화하면서 신앙의 땅을 지켜가는 지혜가 엿보인다. 직사각형의 돌로 건조된 무덤들이 산을 덮고 있는 곳에서 부활신앙을 염원하는 유대인의 믿음을 본다. 그들은 지금도 통곡의 벽을 마주하며 기도하고 울부짖는다. 종교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에 머문다.

예루살렘은 신의 도시라기보다 관광지다. 이스라엘 국민소득의 90%가량이 관광수입이라고 하니 알 일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오른 골고다 언덕길 좌우에는 점포들이 끝없이 즐비하다. 예수의 땅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꺼리가 별로 없게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세월 때문일까. 성지가 기독교역사의 출발점이지만 세상 변화에 색을 바래가는 것이 안타깝다. 신앙인은 누구나 마음속에 늘 성지를 담고 산다. 중학시절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를 세계 4대성인이라며 외었다. 그 예수가 내게는 신으로서 믿음의 대상이 되었다.

순례 길을 떠날 때 서울신대 총장을 지낸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성지를 순례하고 오면 성경을 읽고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읽고도 금방 잊히는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들이 많이 있지만 그냥 그렇거니 지나친다. 이번 여행은 그런 아쉬움을 다소 해소해 주었다. 가는 곳곳, 성경에서 나오는 지역이름 안내판이 그 대로 있는 것을 보면서 역사와 현실의 괴리감을 덜어준다. 아내와 함께 한 버킷리스트, 생애의 큰 소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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