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이 닫힐 때
말문이 닫힐 때
  • 승인 2019.08.0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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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우린 가끔, 말문을 닫을 때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말기’(‘말귀’의 경남 방언)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님에도 긍정이든, 부정이든, 충격적인 일이나 큰 상처를 만나면 사람들은 ‘기’가 막힌다고 한다. 기가 막히면 말이 막힌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말처럼 대개 사람들은 그럴 때, 쉼표처럼 하던 일 뒤로 멈추고 앉아 고요 속, 기도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빠져나갈 틈을 찾아 궁리를 하게 된다. 각자의 방법대로 막힌 말문을 열어줄 열쇠의 구멍을 찾는 것이다.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안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더불어 내면을 아는 가장 확실한 소통의 방법이 아닐까. 상대가 있든 홀로이든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내면과 대면하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성대 용종’이 생겼다며 의사는 내게 한동안 말을 삼가라고 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말문을 닫고 있는 나를 보며 떠올리기를 ‘혹시나 말 못 하는 벙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오랜 시간 절대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괜히 답답한 마음에 몇 마디 어설프게 거들다가는 목에 구멍을 뚫어 수술을 할 수도 있고 말을 영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며 잔뜩 겁을 준다. 그만큼 말을 아끼라는 말이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말, 많은 세상에서 침묵하고 사는 일만큼 힘든 일 또한 어디 있을까 싶다.

대문밖에 나서는 순간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화답을 요구해 옴에도 불구하고 수화처럼,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말문’을 닫아거니 ‘귀문’이라도 열어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또한 배운다. 밖으로 내뱉으면 말이요 쓰면 글이 되는 것이라 여겼다. 정화되지 않은 채 터진 입으로 마구 쏟아내는 말,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았다.

말을 하기 위해 성대를 쓸 때, 고함이나 헛기침 그리고 웃음 등 남용과 오용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법. 말하거나 노래하기를 줄이고 가장 낮은 강도로 말하는 것을 유지해야 하는 일. 시끄러운 환경에서 말하기를 피하며 기계 소리 흉내 내기, 익살스러운 음성 등과 같은 괴상한 언변을 늘어놓지 말아야 하는 등등 말하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는 말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건널목이나 좁은 골목 횡단보도에 서서 빨강, 파랑, 주황색의 신호등을 켜 드는 일처럼,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일이란 먼지나 티끌 많은 세상, 외면하거나 멀리하며 살아가기에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신호등이 제시해준 불빛에 발맞춰 직진으로 치달아 곧장 내달릴 때도 있지만 머물거나 쉴 때도 있을 것이다. 한 생각을 쉬거나 한숨 돌리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고 마음의 휴식을 얻기도 하지만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건너는 일이야말로 내 생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수없이 되묻게 되는 화두였다.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일은 들끓도록 휘휘 젖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처럼 맑은 물을 얻기 위해 흙탕물을 온전히 퍼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가만히 가라앉히는 자연정화의 방법은 어떨까 싶다. 극한으로 치닫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마음속에 담긴 생각들을 나열해보고 한 생각 쉬는 일처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시절, 그 사람 앞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았던 절정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나무나 곡식들, 열매 맺는 모든 것들이 마지막 힘을 내는 정점에 서 있다. 이제부터 열흘에서 보름 남짓 여름의 정점, 무더위의 정점을 지나게 된다. 비록 땀을 쏟고 숨차게 힘든 시간도 겪을 테지만 분명 정점을 지나야 얻을 수 있는 것들 또한 있을 것이다. 쉬 내려놓지 못하고, 천천히 가는 것은 더욱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땀 뻘뻘 흘리며 걸어온 길이 내게도 있었다. 이젠, 언덕에 올라 미루나무 아래 잠시 앉아 여물어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칠월이 팔월에게 손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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