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폐선·방앗간…일상서 예술을 길어올리다
도마·폐선·방앗간…일상서 예술을 길어올리다
  • 서영옥
  • 승인 2019.08.12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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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김결수
일터에 깃든 인생 흔적 조명
삶↔노동↔예술 선순환 실천
불에탄나무요강종기카메라
김결수 작 'Labor&Effectiveness'
 
철기름통
김결수 작 'Labor&Effectiveness'
 
불에탄나무 도마
김결수 작 'Labor&Effectiveness'
 
볏짚구들장-나무철근
김결수 作 ‘Labor&Effectiveness’
 
김결수인물
김결수
방천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눈높이만큼 낮게 뜬 초승달을 볼 수 있다. 날렵한 초승달의 아우라가 마주한 집 주인을 닮았다고 하면 비약이 지나칠까. 반달에 못 미치는 야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단단하고 굳건하다. 바로 작가 김결수가 운영하는 갤러리 ‘Moon(문-달)’의 간판 이미지다.

김결수는 50대 후반의 중견작가이다. 나이를 차치하고라도 개인전 23회, 단체전은 무수하니 그를 중견작가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대구에 거처를 두고 활동하는 작가 김결수는 갤러리 Moon의 대표이기도 하다. 카페를 겸한 갤러리 Moon에서는 지난해(2018년)부터 꾸준히 청년작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김결수가 자발적으로 기획한 이타적인 전시이다. 안이하게 주저앉아 자족에 그치지 않으려는 작가 자신의 자각이 반영됐다.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과 한발 앞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의식의 실천이기도 하다.

한순간이어도 기억되는 작품이 있다. 인상적인 예술작품과의 첫 대면은 첫사랑의 추억만큼이나 기억이 짙다. 김결수의 작품도 그랬다. 둥근 음료수 캔들을 압축해 커다란 입방체로 만든 작품을 본 것은 10여 년 전이다. 세월이 가도 기억의 도입부에 저장된 그 작품에 대한 인상이 강하다. 작가가 같은 맥락의 후속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한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이를테면 세월의 질감이 선연한 나무기둥에 겹겹이 대못을 박은 작품(갤러리 쿤스트 초대전, 2017년 5월)이 그렇다.

신문지를 가늘게 오려 천장에서 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린 설치작품(예술발전소 전시작, 2019년 1월)과 해체된 집의 구들장과 서까래를 전시장 바닥에 둥글게 배치하고 캔버스엔 숯으로 점점이 집을 그린 평면회화(선-삶의 비용전, 2016년 5월 10월(대구미술관))를 비롯해서 경포대 바다에 볏짚으로 만든 조형물 설치(평창동계올림기념전, 2018년 2월)등, 지금까지 김결수는 주로 삶의 현장에서 건진 생생한 모티브를 예술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매진했다.

지난 6월(2019년) 수성아트피아 호반갤러리 전시장 바닥에는 숯덩이를 설치했다. 벽면에 건 작품도 숯 가닥들이 조직을 이루었다. 숯 위에 얹힌 빛바랜 밥그릇과 요강에도 불이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검은 숯은 나무 본래의 재질과 효력을 상실한 집의 일부였다. 생계수단이던 방앗간 전부가 주저앉은 것이다. 80년 된 방앗간이 불에 탔다. 방앗간은 노동의 현장이자 삶의 안식처로 간주된다. 휴식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휴식은 몸이 고될수록 그 맛이 달다. 김결수의 집은 고단한 노동과 달콤한 휴식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리얼한 삶의 현장이었다. 작가가 이러한 집의 흔적을 숯으로 제시한 이유를 간파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숯이 직접적인 언어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김결수가 설치한 작품인 숯에는 생명을 꺼버리지 않으려는 나무의 노동도 스며있다. 타다가 만 숯은 치솟는 불길 속에서 제 형상을 유지하려는 나무의 발버둥이다. 숯에 난 균열은 새로운 태동을 희망하던 나무의 또 다른 몸부림이다. 나무의 몸부림은 삶을 지탱해온 인간의 노동에 비견된다. 결국 숯의 노동은 삶의 내부로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남겼다. 그 숯이 인간의 삶에 대한 심층적인 유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예술가는 꿈꿔오던 세계를 예술 속에서 실현한다. 김결수가 포착한 삶의 흔적에는 어김없이 노동이 수반됐다. 일관된 모티브는 ‘노동이 스민 삶의 흔적’들이다. 노동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역 추적하여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의 예술은 새로운 리얼리티를 수립한다. 그는 속물주의를 배격한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멋진 말에도 기대지 않는다. “예술도 노동이다”라고 한 김결수는 형상의 창조에 몰두하지 않으며 발견한 오브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가 삶의 현장에서 발견한 오브제는 예술과 삶을 평행선상에 놓는다. 작가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삶=예술, 삶=노동=예술, 예술=노동=삶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노동은 곧 인간의 삶으로 귀결되고 삶 전체를 관통하는 예술로 거듭난다. 텍스트마다 얼비치는 ‘노동(삶)에 대한 위무’를 간과할 수 없다.

예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일을 근본적인 역할로 삼아왔다. 예술과 삶이 맺고 있는 가장 밀접한 관계를 노동으로 상정한 김결수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삶’이 지 싶다. 김결수에게 예술의 주된 대상은 노동이 담보된 삶이다. 제 소임을 다 한 구멍 난 도마에는 포장마차 여주인의 지난한 삶이 스며있다. 바닷가에 버려진 폐선에는 40년간 가족을 책임진 노어부의 잔주름 같은 삶이 녹아있다. 모두 김결수가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한 것들이다. 그의 작업은 결국 삶과 가장 밀착된 거리에서 삶을 재 규명하는 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술의 기원은 주술과 유희와 노동이다. 그렇다고 볼 때 김결수의 현대미술은 예술의 근원에 가닿는다. 삶의 근원에는 어김없이 노동이 자리한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예술가는 고립을 자처하고 자기와 합일할 때 다른 고립된 자와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진정한 고독은 예술가를 타인으로부터 단절이 아닌 사람들의 깊은 심층세계에 접근하도록 돕는다. 김결수가 주목하는 노동도 결이 같다. 그의 노동은 삶에서 예술로, 다시 예술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적인 구조를 이룬다. 갤러리 Moon을 상징하는 야윈 초승달이 더욱 단단하게 다가왔던 이유이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가득히 채워야만할 그 어떤 공백’을 겨눈 내적인 추진력이 초승달이라는 형태를 찾아낸 것 아닐까 한다. 채워지지 않은 초승달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만월이 되기까지 요구되는 노동도 가늠된다. 글머리에다 김결수의 다양한 업적들을 소상히 밝힌 이유이다. 그의 모든 업적들은 노동이 밑바탕이다. 18세기 프랑스 살롱의 풍경처럼 Moon은 이제 전시와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이 예술 문화에 동참하기 용이한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지근거리에서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는 일은 흔치 않은 행운이다.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예술가에겐 실낱같은 창작의지가 작가의 삶 전체를 지탱하게 한다. 예술이 곧 삶 전부가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꾸준한 작업은 드문 일이다. 이타심의 실천은 더욱 귀한 행보이다. 모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노력과 노동이 담보됐다. 김결수는 다양한 실천으로 예술이 하나의 조형적 대상에 불과하지만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작가 김결수는 현재 국내외전시 준비로 분주하다. 다가오는 8월말 강정현대미술제를 시작으로 오는 9월에는 일본 오사카 하쿠갤러리 전시를 앞두었다. 이어 11월 말에는 러시아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그의 앞날에 고단하고 부지런한 행보만큼 보람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

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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