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추구하는 최고 가치에 던진 질문
현대인 추구하는 최고 가치에 던진 질문
  • 황인옥
  • 승인 2019.08.21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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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현대미술관 김현준展
"삶 성찰 과정에 질문 매우 중요”
두상에 나뭇가지 솟은 얼굴 조각
자신 향한 자문을 제3자에 확장
잘 변형되는 불완전한 소재 나무
휴머니티 느껴 메시지 표현 제격
김현준 전시작 'how...'
김현준 전시작 'How...'

 

얼굴 형상을 한 나무 조각 두 개가 전시장 바닥에 각도를 달리해 마주하고 있다. 높이가 130cm에 달하는 얼굴 형상의 규모도 놀랍지만 머리카락이 하늘 위로 치솟은 모양을 한 나뭇가지 앞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마 위를 불에 태워 숯이 된 부분을 잘라내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꽂았는데,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났다. 얼굴 조각 뒤편 바닥에는 잘라놓은 숯덩이가 설치돼 있고, 숯덩이 위에는 여지없이 싹이 난 나뭇가지가 꽂혀있다. CAM현대미술관에 전시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조각가 김현준의 작품 ‘How…’다. 

김현준-전시작
김현준 전시작 ‘Never ending’.
 
and thereafter-me
김현준 전시작 ‘and thereafter, me...’.


작품의 난이도가 높은 걸까? 작품 속 의도 찾기가 쉽지 않다. 얼굴 조각, 태우고 자른 숯, 싹이 난 나뭇가지. 이 조합들에서 공통분모를 엮어내기가 간단치가 않다. 도리없이 작가에게 설명을 구해야 하지만 작가가 이에 대해 멈칫했다. “논리정연하게 작품 설명을 할 수는 있지만 자제하고 싶어요.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은 관람자가 스스로 찾아가길 바라니까요.” 작가의 친절한 설명이 자칫 작품 관람에 사족이 될 수 있으니, 작가의 설명보다 관람객의 감성에 맡기고 싶다는 의도였다.

CAM현대미술관 전시 리플릿에 ‘질문이 질문 속으로 걸어간다. 단 하나가 남을 때까지…’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문학 작품 속 문장 같기도 하고, 어느 철학자의 철학적 화두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문구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통한다. 작가가 “이 문구의 핵심 단어는 ‘질문’”이라고 선방을 날렸다. “제게 질문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에요. 삶이나 예술에서 ‘질문’을 성찰의 매개로 삼았고, 자기성찰을 통해 한걸음씩 성장했으니까요.” 작가에게 ‘질문’이야말로 예술을 향한 출발선이자 삶의 화두라는 것.

질문을 통한 자기성찰이 유난히 간절하던 시절이 있었다. 미술대학원 재학 중에 작가는 ‘예술가의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것. 전업작가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 시기에 작가가 집중해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진로를 결정하는 일은 오직 자신의 문제였고,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며 예술가로 살아갈 만큼 예술에 대한 열정이 간절한지에 대한 자기검열이 필요했다. 1년을 꼬박 자문자답(自問自答)에 매달렸고, 그때마다 토끼 형상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1년간 자그마치 60개의 토끼를 조각했다.

작가가 “약육강식에서 초식동물의 나약함과 늘 주변을 경제하고 있는 토끼가 그 당시 내 처지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가로 세로 13cm, 높이 35cm 규모의 토끼형상 조각에 매달렸어요. ‘조각가의 길을 갈 것인지’, ‘간다면 어떤 작품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밀려왔고, 그 과정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때 나무에 즉석으로 드로잉하고 한 땀 한 땀 나무를 팠죠.”

1년간 자문자답을 이어오면서 작가의 길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대학원 진학을 감행하고 본격적인 조각도 시작했다. 이 시기, 토끼 형상은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사람 형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여전히 ‘질문’은 작업을 떠받치는 구심점이 됐다. 하지만 사람 형상 조각에 배어있는 질문의 향상은 좀 달랐다. 작가 자신을 대상으로 했던 질문이 제3자에게로 향한 것. 확장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본’이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물질로 대변되는 ‘자본’ 이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죽음 앞에서도 ‘물질이나 자본’을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져보고 싶었어요.”

나무는 조각에서 불편한 재료일 수 있다. 벌어지고 뒤틀리는 변형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나무의 그 불완전성에 마음을 뺏겼다. 불완전성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한 것. 그가 “나무가 나를 선택했지 내가 나무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제가 표현하는 것이 인간사인데 인간을 닮은 나무가 제 메시지를 표현하는데 제격이었죠.”

작품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작가가 불교의 ‘공(空)사상’을 언급했다. 뒤틀려서 벌어진 나무의 틈에서 ‘공(空)’의 상태를 발견했다. “나무의 갈라진 틈이 비어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뭔가의 시작점일 수 있다는 거죠.” 전시는 24일부터 9월 27일까지. 033-591-300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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