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기에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 승인 2019.08.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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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경영학박사 SQ힉스아카데미 대표
영국의 유명한 수필가였던 가드너는 그의 수필, ‘모자철학’에서 모자의 크기로 세상을 보고 있는 한 남자를 등장시킨다. 일인칭 화법으로 전개되는 그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일전에 ‘나’는 어느 모자 집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모자 가게의 사장은 기다리는 ‘나’에게 자기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모자와 머리의 관계에 대하여 얘기를 꺼냈다. “머리의 크기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저희와 거래하는 변호사들의 머리 사이즈는 놀랄 만큼 큽니다. 그 분들의 머리가 그렇게 큰 것은 생각할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의 머리 크기는 직업에 따라 다른 듯합니다.”

‘나’는 필경 그 모자장수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생각하면서 상점을 나왔다. 머리가 작은 ‘나’는 그 상인에게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속에 보석을 지닌 머리는 반드시 큰 머리가 아니라는 것, 비록 내가 머리는 작을망정, 내 뇌의 회전이 최상급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지금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제각기 자기 특유의 창구멍을 통해서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이러한 제한된 직업적 시야를 가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사물을 직업적인 눈으로 보고 있어서 행동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기교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들은 모두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살고 있다. 또 이웃 사람을 우리 자신의 자(尺)로 재고, 자기류의 산술에 의해서 그들을 계산한다. 우리는 객관적으로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보며, 실제로 있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있는 것이나 보고 싶은 것을 볼 뿐이다. 우리가 사실이라는 그 다채로운 것을 알아보려고 할 때에 수없이 실패를 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래 전에 읽은 가드너의 짧은 수필, ‘모자철학’을 다시 읽고 이렇게 요약해 본 것은 장관 후보자 ‘조국’ 덕분이었다. TV와 신문에서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조국’은 화제의 주인공이다. 심지어 곧 여든이 되시는 장모님과 아흔을 앞둔 어머니마저도 내게 ‘조국’ 이야기를 하실 정도이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청문회 후에 판단해도 될 듯합니다’라고 제법 강하게 말해도 이미 그 분들의 생각은 확고한 듯 단호하기까지 하다. 그러다가 내가 한 말, ‘제가 생각하기에는’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추억과 함께 갑자기 떠올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 때 우리 반의 담임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부임한 여자 선생님이었다. 그 분은 부임하여 처음으로 맡게 된 제자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발표할 때에 반드시 ‘제가 생각하기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라고 가르쳤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예쁜 권위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은 점차적으로 다른 반과 차별되는 우리 반의 고유한 말로써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들은 일 년 동안 조금은 습관적으로 또 조금은 자부심으로 ‘제가 생각하기에는’이라는 말로 발표를 시작하곤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부임한 20대 초반의 그 선생님은 ‘제가 생각하기에는’이라는 말을 통해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마도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주장하는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관후보자 ‘조국’과 관련한 일을 겪으며 그리고 가드너의 ‘모자철학’을 다시 읽어보며 그 말투에 담긴 선생님의 의도를 달리 이해하게 되었다.

관견(管見). 자기의 생각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대롱으로 하늘을 본다는 뜻이니 내 생각이 보잘 것 없다는 겸양을 담고 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정도의 짧은 소견일 따름입니다’. 언제 ‘조국’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앞에 무릎을 모으고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라는 겸양의 말로 대화를 이어가 볼까 한다. 그 예쁜 선생님 앞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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