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하고 왜곡하고 보복하고…일본은 왜?
침략하고 왜곡하고 보복하고…일본은 왜?
  • 이대영
  • 승인 2019.09.18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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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면이 바다’ 고립국가인 일본
국제정세·각종 정보에 늘 갈증
신라시대 이미 한반도 지도 작성
정보력 바탕으로 조선 정복 나서
비밀리 광개토대왕 비문 탁본
시멘트 땜질로 역사기록 왜곡도
아시아 경제적 위상 흔들린 일본
아베 정권, 韓 때리기로 극우 결집
백색국가 제외 등 경제보복 나서
신택리지-컬러플읍성
신택리지 컬러풀 읍성. 그림 이대영

 

이대영의 신대구 택리지 - (36)미래대구의 경제역량 제고를 위해


◇해양국 일본 대륙문화·정보에 혈안, 대륙정보엔 눈에 쌍심지 켜고 대들다

영화‘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나온 “절대반지를 차지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가진다(He who has the one ring has this world)”라는 말을 가장 신봉하는 민족은 일본이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2016)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저서에서 대양고도의 해양국가인 일본은 대륙으로부터 국제정세, 학문과 각종 정보에 늘 갈증을 느꼈다. 일본의 3대 신물국보(神物國寶)인 칠지도(七支刀), 인감(印鑑) 및 동경(銅鏡)이 정보에 관련이 있다.

칠지도(七支刀)는 정보제공에 있어 주군(主君)에 대한 맹세, 인감(印鑑)은 제공한 정보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신에게 맹세, 동경(銅鏡)은 전쟁 때 호경(鎬鏡)처럼 신속하고 정확함을 은유하고(metaphor) 있다.

BC 450년경 중국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 “전쟁은 국가존망과 생사가 달렸으니 반드시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而索其情)”는 말에서 동양에선 정보(情報)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대양 속 고립국가로 일찍 정보의 가치를 인식한 왜구(일본)는 한반도 침입(염탐)작전을 수 없이 감행했다.

신라시대 때에 이미 한반도의 전체 지도를 작성했고, 군사 및 산업정보를 수합했으며, 오늘날 인적정보인 휴민트(humint)까지 확보했다. 1500년경 연산군(재위 1494∼1506) 때 전주은광소(全州銀鑛所)의 기술자를 납치해 가 일본 은광산업을 융성시켰다. 1550년대에 세계 은(銀) 마켓셰어(market share) 34%, 은과 조총을 맞교환해 세계 조총의 30%를 장악했고, 그런 군사력으로 조선정복의 기틀을 마련했다.

1590년에 들어서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는 “모든 정보를 내게 다 보고하라(すべての情報を私見てください)”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기에 그의 별명은 관백(關白, Kanpaku)이었다. 수합된 정보와 국력을 바탕으로 조선정벌의 문록프로젝트(文祿の役, 壬辰倭亂)를 기획했다.

1592년 4월 13일(음력)에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은 길만 비켜라(征明假道)’의 전략으로 i) 조선의 실정을 파고들었기에 왜병의 절반은 조선 백성이라고 할 만큼 현지조달을 했고, ii) 왜병의 한양입성에 앞서 왕궁과 백성을 버리고 신의주까지 몽진한 처지에도, 선조 앞에 대신들은 여전하게 설전만 했기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놈들의 설전은 여전하시네”라고 자탄했던 선조, iii) 세계 최고의 도공들을 다 잡아 갔었고, iv) 덤으로 끌고 온 조선 백성을 나가사키와 마카오 국제노예시장에 조선노(朝鮮奴) 3명에 조총 1자루(당시 6분의 1 가격)에 30~40만 명을 헐값에 내놓아 텅텅 빈 나라 곳간을 채웠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면, i) AD 369년 진구황후(神功皇后) 때 한반도를 점령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880년에 발견된 광개토대왕 비문과 비교하면 한반도 정벌야욕을 허위로 작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허위기록을 토대로 ‘죽은 시체를 빌려서 영환을 불어넣겠다(借屍還魂)’는 계략을 마련했다.

1883년 일본육군참모본부 사코우 가케아키(酒句景信, 1850~1891)는 비밀리 광개토왕의 비문을 탁본해, 1913년 비문을 현지조사, 1935년 관동군의 군사작전으로 비문을 조작하고 시멘트로 땜질을 해 역사적 기록을 왜곡했다. ii) AD 663년 후백제의 부흥을 돕고자 금강(白江)하류 전투에 전함 500척과 5만 병정을 파견해서 협공에 실패했으나 오히려 신라정벌로 기획조작했다. iii) AD 752년 당나라가 안록산 민란으로 정치혼란을 겪자, 나당동맹 공백기를 이용해 신라침공을 구상했다. 실권자 후지와리 나가마라(藤原仲麻呂, 706~764)는 신라정벌 10개년계획(將伐新羅)이라는 정벌기획을 마련했다.

주도면밀한 장벌신라프로젝트 전쟁의 대의명분은 ‘일왕 알현을 하지 않은 오만불순((不謁日臣之傲)’이었다. 핵심전략은 정면에는 일본이 공격하고, 발해는 신라의 뒤통수를 쳐서(후방협공) 멸망시킨다. 준비기간은 756년부터 761년까지, 병참준비는 전함 894척, 30만 명 병장정예화 훈련, 신라어 통역관 양성, 신라정벌 당위성 대국민 설득 홍보를 했다. 757년 11월 관리시험에 “요즘 신라가 오만불순하기 짝이 없다. 날뛰는 고래와 멧돼지를 잡듯이 신라를 잡으려고 하는데 싸우지 않고 신라를 굴복시킬 방안을 논하라”는 책문이라는 논문시험문제까지 출제했다.



◇ 2019.7.4. 일본의 한국경제보복의 새로운 의미

군사전쟁을 대신한 경제침략은 BC 650년경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고사에 나오는 관중(管仲)의 저서 ‘관자(管子)’에도 나온다.

경제로 이웃나라를 정복하는 비법(以經濟征隣國)은 ‘큰돈이 된다는 생각에 빠뜨려 누란지위(累卵之危)를 망각하게(以發財讓忘累卵之危)’하는 것이다. 한곳에 모든 것이 쏠리도록 해놓고 불식간에 버팀목을 잡아 빼거나, 모두가 모여 있을 때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경제적 침략은 2019년 7월 4일의 경제보복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여러차례 시도했다. 대표적으로 1876년 방곡령(防穀令)을 불러온 미목경제정한(米木經濟征韓), 이어 강제국채정한(强制國債征韓)이 있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에 의도한 대로 한일합방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으로 일본본토에 대한 미국·영국·중국·소련 4개국 분할통치 대신에 능숙한 외교력을 이용해 한반도의 38도선 남북분단으로 바꿔치기했다. 신이 준 축복이라는 6·25전쟁으로 3년간 연 60%의 경제성장, 이후 10년간 연 40%의 급성장으로 제2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1997년 5월, 갑작스러운 투자자금회수에 이어 긴급금융지원 요청까지 거절했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을 증폭시켜 IMF 국란으로 폭증시켰다. 2018년 11월 반도체 핵심소재수출 규제 3일후 해제, 2019년 5월에도 일본투자자금 긴급회수, 7월1일 반도체 핵심소재 3종 규제선언, 8월 2일 한국을 백색국가(white state)의 명단에서 삭제하는 경제보복작전을 전개했다.

이번 한국보복 경제작전(Korea-retaliating economic operation)이란 블랙박스를 해체해 보면, i) 일본은 ‘물건 하나에도 목숨을 걸다시피 최선을 다하는(一所懸命に)’ ‘물건 만들기(ものづくり, 物作り)’가 일본의 자존심이었다. 그런데 2014년 12월 1일 국가신용도에서 한국 AA로 일본보다 1단계 낮았지만, 2017년 12월 한국이

AA2로 2단계나 앞섰다. 더욱이 2019년 5월 29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에서 2018년에 일본 25위, 한국 27위로 앞섰으나 2019년 한국 28위에 일본 30위로 역전되었다.

제조업대국 일본이라는 자존심과 수출관리차원에서 특단의 기획이 필요했다. ii) 일본의 정치적 현실에서 극우결집이 필요했고 아베정권의 ‘전쟁할 수 있는 정상국가 과제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한국 때리기를 이용해 참의원 중간선거 득표 전략으로도 긴요했다. iii) 동시에 1980년대 세계 제2위 경제대국 일본의 국제적 위상인 아시아의 맹주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한국경제 흔들기가 최선비책이었다.

물론 미국의 푸들(American Poodle) 혹은 트럼프의 푸들(Trump’s Poodle)이란 별명을 가진 아베 신조(安培晉三)가 아니더라도 일본인이라면 큰일(한국경제보복)에 앞서 몇 차례 ‘사전 뿌리돌림(ねまわし)’을 한다.

최종적으로 2019년 6월 28일 방콕 G20에서 아베와 트럼프는 만나서 속내를 주고받았다. ‘아베의 괴벨스(Abe’s Goebbels)’라는 별명을 가진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せこう ひろしげ, 1962년생)는 일본 경제산업대신으로 어떤 논리에도 대응과 반박에 능수능란했다. 한국경제 보복방안은 아베개조내각(安培改造內閣)의 고위관료 자문(策問)과 몇 차례 토론을 거쳤다.

산업전반의 현황, 특정업체의 실태, 일본부품의 집중도 등에 대한 빅 데이터와 실무부서의 효과적인 한국경제보복방안과 의견을 수렴한 뒤 내각실세 6인회에서 몇 차례 심의를 거쳐 결정했다. 그러나 한 마디로 ‘현미경으로 잎사귀의 잎맥까지 봤으나, 전체 숲과 나무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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