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밭의 기러기 - 새에게 바람 싣는다
갈대밭의 기러기 - 새에게 바람 싣는다
  • 승인 2019.09.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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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우리의 선조들은 새와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 문양(文樣)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옛 그림이나 깃발에는 물론 도자기, 옷, 솟대, 노래, 시문(詩文), 춤사위 등에 수많은 새들이 등장합니다.

학(鶴)은 도자기에는 물론 관복(官服)의 흉배(胸背)에도 그려지고 수놓아졌습니다. 모두 학처럼 깨끗하고 장수하라는 기원(祈願)이 담겨져 있습니다.

선조들이 그린 메추리 그림에도 깊은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메추리는 대개 두 마리와 조 이삭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메추리는 평생 짝을 바꾸지 않으므로 두 마리는 곧 부부를 뜻하고, 조 이삭은 많은 먹이를 뜻하므로 평생 넉넉하게 해로(偕老)하라는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매추리와 조 이삭을 함께 그린 그림을 일반적으로 ‘안화도(安和圖)’라고 합니다. ‘안(安)’은 메추리를 뜻하는 ‘암( )’과 소리가 비슷하고, ‘화(和)’는 벼를 나타내는 ‘화(禾)’와 소리가 같기 때문에, 먹을 것을 넉넉하게 갖추고 오래 화평하라는 축원이 들어있습니다.

또 메추리와 국화를 함께 그리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암국도( 菊圖)’에서 ‘국(菊)’은 ‘거처한다’는 뜻의 ‘거(居)’와 소리가 비슷하므로, 결국 ‘안거도(安居圖)’가 되어 편안(便安)하게 거(居)하라는 의미가 담기게 됩니다.

이 암국도에 낙엽(落葉)까지 그려 넣으면 일을 즐거이 한다는 낙업(樂業)과 같은 발음이 되어 ‘안거낙업도(安居樂業圖)’가 됩니다. 이는 말 그대로 주어진 일을 즐거워하며 만족하게 살라는 기원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메추리를 아홉 마리 그리면 이른 바 ‘구세안거도(九世安居圖)’가 되어 오랜 세월 두루 편안하라는 의미를 품게 됩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어느 집에 9대가 한 집에 살았지만 화평하였다는 고사(古事)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민화(民話) 가운데에는 갈대와 기러기가 어우러진 이른 바 ‘노안도(蘆雁圖)’가 있습니다. 갈대 로(蘆), 기러기 안(雁)을 씁니다. 이때의 ‘노안’은 늙을 노(老), 편안할 안(安)의 ‘노안(老安)’과 발음이 비슷하여, 역시 늙어서 편안하라는 바램을 담고 있습니다.

노안도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데에는 기러기에 담긴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선 기러기는 한 번 짝을 정하면 짝을 바꾸지 않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부부가 노인이 되도록 함께 하라는 기원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수컷기러기는 가족을 위해 먼저 먹이를 찾고, 가족들이 먹이를 먹을 동안 망을 보는 희생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위험한 적이 나타나면 일부러 다친 척하며 적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여 가족들이 계속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줍니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먹이를 다 먹었다고 생각되면 비로소 정상적으로 날아와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가을이 되어 하늘 높이 날아 이동을 하게 될 때에는 교대로 앞장서서 뒤에 따라오는 다른 기러기를 도와줍니다. 협동과 양보를 실천합니다.

노안도 속의 기러기들은 대개 살이 쪄 있고 낮게 날고 있습니다. 이는 노년에도 먹을 것이 많으라는 바램과 함께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겸손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 노안도에는 주로 두 마리가 나타나지만 때로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두 마리는 부부를 상징하고 여러 마리는 많은 친구를 상징합니다. 노년일수록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처럼 노년이 될수록 편안하게 살라는 기원을 담아 부모님의 방에 이 노안도를 걸어놓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어떠한 기원을 품고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에나 담겨있는 상징과 비유를 찾아내어 새기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가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정성이 지극할수록 모든 일에 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또한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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