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인간을 구원하는 ‘완전한 빛’
불완전한 인간을 구원하는 ‘완전한 빛’
  • 황인옥
  • 승인 2019.10.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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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다시 태어나는 빛’展…20일까지 웃는얼굴아트센터
전시장 벽면 빔 프로젝트 투사
기존 디지털 화면서 매체 확장
인간이 봉착한 수많은 문제
전지전능한 ‘빛’이 해결사로
이이남-작1
이이남 作 (Beam Projector, 10MIN 2019).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이 프레임 변화를 시도했다. 동·서양의 명화나 현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차가운 디지털 프레임 속으로 끌어들인 후 애니메이션 기법과 시공간을 초월하는 재해석으로 국내외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던 이전의 형식에서 벗어나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현실세계의 벽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한결 따스해진 작품으로 웃는얼굴아트센터 특별기획전3을 찾았다.

변화된 그의 작품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또 다른 이이남을 만나는 기분”이라며 반색하는 분위기다.

최근 전시 개막식에 모습을 비춘 이이남 작가가 “디지털 화면에서 벗어나 시원한 전시장 벽면을 캔버스로 삼아 작업한 작품”이라며 “매체가 확장된 스케일이 큰 작품을 해 보고 싶었다”며 변화된 작품을 들고 온 배경을 설명했다.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막식 등의 큰 행사에 미디어파사드나 다양한 장르가 융·복합된 작품을 하면서 스케일이 커졌어요.”

작품 제목이 ‘다시 태어나는 빛(Reborn Light)’이다. 그가 말했듯 작품에서 형식과 내용에 큰 변화가 읽힌다. 우선 디지털 모니터 속이 아닌 전시장 벽면에 빔 프로젝터 영상을 투사한 매체의 확장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시장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거대한 스케일이 눈과 마음을 광활함으로 이끈다. 하지만 더욱 큰 변화는 내용에 있다. 현실 속 불완전한 인간의 이야기에서 완전한 존재로 담론의 지평을 넓혔다.

이번 작품은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출발했다. 불완전한 인간이 가지는 고통과 고뇌가 도화선이 됐다. 불완전성은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고, 문제 해결의 필요성은 절박해졌다. 과연 누가 해결할 것인가? 작가는 ‘완전한 존재’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 뇌리를 스친 것이 ‘빛’이었다. ‘완전한 존재’와 동일시인 ‘완전한 빛’의 탄생이었다. 작가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빛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태양계에서 보는 빛과 달과 태양의 빛은 다르다”며 둘의 차이는 “완전함과 불완전함”이라고 했다. “인간의 삶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순수하고 완전한 빛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그래야 불완전함으로부터 파생되는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게 되죠.”

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의 세계는 그야말로 완전함 그 자체. 작가는 꽃, 물결, 나비 등으로 완전한 빛을 형상화한다. 작품에 인간이 등장하지만 그 역시도 완전함의 아우라로 넘실댄다. 절대자 빛의 도움을 받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발견한 인간은 발견하기 이전의 인간과 달라요. 완전한 빛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불완전하지 않은 것이죠.”

이이남은 소치 허백련, 겸재 정선, 모네,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한국과 서양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이른바 ‘움직이는 회화’로 혁신성을 인정받아 왔다. 디지털에 특유의 따스한 감성을 입힌 ‘한국적 미디어아트’로 국내를 넘어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에서 광폭 행보를 보이며 ‘백남준의 진정한 후예’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날로그인 명화를 디지털이라는 현대의 매체에 새로운 감성을 입힌 것이 예술성의 혁신으로 평가됐다.

동·서양 고전을 디지털 미디어로 재구성을 시도한 배경에는 작가정신의 개입이 있었다. 그에게 중요한 덕목은 ‘진정한 소통’이다. “관람객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들의 발길을 조금이라도 오래 머물는 매개로 ‘명화’를 활용하게 됐다”고 했다.

국내외에서 호평을 이끌었던 디지털 미디어와 명화의 조합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1997년 순천대에서 애니메이션 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다 학생들이 포토샵이나 편집 툴을 이용해 컴퓨터 안에서 영상의 모든 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디지털 미디어를 미술에 적용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누군가 “이이남은 뭘 해도 따뜻하게 풀어낸다”고 평가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5년전 대구미술관에서 처음 인터뷰했던 이이남과 훨씬 유명해진 지금의 그는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과 겸손함이 얼굴에 번졌다. 그러나 온화한 얼굴 이면에 가려진 또 다른 이이남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초등학교 1, 2학년때부터 ‘인생이 무엇인지?’, ‘왜 태어나는지?’, ‘자연은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했다. 일찍부터 발현된 구도자적인 면모랄까? “깨어있고자 하고, 깨닫고자 하는 열망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런 태도가 이어져 ‘완전한 존재’를 찾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영향도 있었을 것 같아요.”

‘완전한 빛’을 주제로 하는 빔 프로젝터 작품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했다. “새롭게 시도하는 매체인 만큼 다양한 콘텐츠가 시도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여전히 고전 명화나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디지털 미디어로 재해석하는 작품들도 병행한다고 했다. “디지털 미디어의 제약된 스케일에 비해 이번 작품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경우에 따라 아날로그적인 오브제와 자유롭게 결합하며 틀을 벗어나는 이런 스케일의 작업도 계속할 계획이에요.” ‘이이남-다시 태어나는 빛’전은 20일까지 웃는얼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053-584-872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이이남은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및 동 일반대학원 미술학 박사를 거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 벨기에, 중국, 독일, 카타르, 뉴욕, 싱가포르, 파리, 시드니, 미국 미시건, 네덜란드 등에서 49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800회 이상의 단체전을 열었다. 그리고 UN본부(미국), 아시아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리움미술관(한국)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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