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에 꽃이 피다, 소우주가 열리다
큐브에 꽃이 피다, 소우주가 열리다
  • 황인옥
  • 승인 2019.10.16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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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프라자갤러리 최정인展
하나의 현상에 다양한 시각 접목
2차 평면→ 3차원 도형 확장
개념적·미니멀적 화면 구성
최정인작-큐브2
최정인 작 ‘Space F4’




작가 최정인이 무심코 굴러다니는 연필을 보고 문득, 벽에 세워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벽에 세우자 그림자가 생기면서 하나의 선에 불과했던 연필에서 삼각형이 생겨난 것.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자 이번에는 작가적 호기심이 더 크게 발동했다. 뭔가 더 하고 싶어졌고, 끌린 듯 핀과 실을 찾았다. 연필심을 꼭짓점으로 연필 위 양 옆에 핀을 꽂고 실로 연결했더니 이번에는 벽면에 삼각형이 생겨났고, 평면에서 부조로 변화한 느낌도 들었다.

거기까지였으면 어느 볕 좋은 오후의 작은 에피소드로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지인이 같은 도형을 보고 육각형이라고 하자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삼각형과 육각형 중 어느 것이어도 상관이 없지만 삼각형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형이 지인의 눈에 육각형으로 보일 수 있다는 그 사실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어느 오후에 만지작 거린 취기 어린 행위는 캔버스 위 드로잉으로 남겨졌다. 사실적인 그림에서 미니멀하면서도 개념적인 작업으로 작품의 변화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분이나 통조림 깡통이나 연필꽂이 등의 일상 속 사물이 연필로 대체되고 사물에 따라 핀의 위치와 각도가 달라지자 다양한 기하학적인 도형이 만들어졌다. “하나의 현상을 보고 사람에 따라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2차원 평면이 3차원 도형으로 확장되자 이번에는 도형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틀었다. 사각 큐브의 등장이었다. 큐브를 한 조각씩 자른 형태로 두 개 내지 세 개 또는 여러 개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했다. 잘려진 큐브 단면들에는 꽃그림이 올라오거나 핀으로 바탕에 칠한 색면을 긁는 식의 행위를 가했다. 3차원이 제대로 구축된 것을 보고 작가는 쾌재를 불렀다. 비로소 세상을 입체적으로 제대로 보게 됐다는 안도감이었다.

작가가 “여러 면을 펼쳐놓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답답했어요.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의 정보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위험해 보였죠. 그 정보가 거짓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현재의 작업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사실화에 가까운 구상작업을 했다. 그때 막연하게 자괴감에 사로잡히고는 했다. 언제까지 작가의 감정이 배제된 사실화를 그릴 수 없다는 초조함 같은 것이었다. 당시 무작정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뉴욕에서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아다녔고, 다양한 공간에서 현대미술을 접했다. 한계를 모르는 자유분방한 미국의 현대미술을 접하면서 조금씩 자심감이 차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도 되겠구나” 하고.

귀국 후 꽃그림을 그렸다. 꽃그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던 작가였기에 꽃을 소재로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미술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면서 부정적이었던 바로 그 꽃으로 새로운 그림에 대한 승부수를 띄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시기 작가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팔공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일주일에 절반을 그곳에 기거하면서 다양한 야생화를 보며 꽃이야말로 우주의 축소판임을 자각하게 됐다.

“암술과 수술, 꽃받침, 씨방, 밑씨, 꽃턱 등 하나의 꽃송이에 우주가 깃들어있는 것을 보고 꽃을 제가 말하려는 주제와 연결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꽃으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에 도전했다. 초기에는 캔버스 전면에 꽃을 그렸다. 현실의 꽃이 아닌 관념의 꽃이었다. 하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그때 문득 그렸던 그림 위를 물감으로 덮기 시작했다. 대신 꽃의 일부를 남겨 사각 큐브 속에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관념은 더욱 짙어졌다. 이번에는 색상을 더욱 화려하게 그렸다. 색은 화려하되, 표면은 거칠게 마무리했다. 바탕색을 칠하고 사포질하고 다시 칠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거친 느낌을 들여놓고, 핀으로 표면을 긁거나 훼손하며 상처같은 선들도 끌어들였다.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거친 표현으로 은유한 것.

“제가 경험한 인간의 마음은 생각보다 거칠었어요. 그 마음의 형질을 거친 면으로 표현해 봤어요.” 지금은 큐브라는 사각 프레임에서 벗어나 완전한 평면으로 꽃을 그리기도 한다. “큐브라는 프레임이 답답하게 느껴지면 평면 작업을 하기도 해요.”

구상이나 비구상인 신작 모두 배경은 허공으로 처리된다. 사물이나 큐브가 허공에 불완전하게 붕 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장치 속에 작가는 해묵은 불안감을 숨겼다.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늘 했어요. 그 불안함이 지금까지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불안함, 작은 정보로 하나의 현상을 왜곡해 버리는 세상을 꽃과 큐브로 표현하며 ‘인간’을 탐구하는 최정인 전시는 대백프라자갤러리 A관에서 20일까지. 053-420-801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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