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늘어난 봉강연묵회…40세 기준·2개로 나눠 활동
회원 늘어난 봉강연묵회…40세 기준·2개로 나눠 활동
  • 김영태
  • 승인 2019.10.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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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명 참여한 11회 전시 이후
임지회·필한회로 분회 추진
같은 해 10·11월 회원전 열어
古稀 기념 방담 프로그램 출연
타지역 서도 분위기 알고자
순회전 개최 의지 보이기도
소헌선생-여산울림
소헌선생 고희 이듬해의 작품 「廬山鬱林(여산울림)」, 40.0x140.0cm, 1978(戊午)
 
소헌
대구mbc TV ‘문화경북’의 소헌선생 고희기념 방담 사진. 가운데가 소헌선생, 오른쪽이 심재완 교수. 1977

 

소헌 김만호의 예술세계를 찾아서(29)-노년기(老年期)3. 1977(70세)~1978(71세)

정사년(丁巳,1977)의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 해에 고리(古里) 원자력발전소에서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기 1호가 점화(1977.6.19)되었다. 수력(水力)과 화력(火力)의 발전(發電)시대에서 원자력(原子力) 발전의 이른바 원전(原電)시대에 돌입하였다. 또한 이 해는 부가가치세가 처음 시행되고 의료보험제가 실시되어 명실공히 사회복지제도가 선진국의 수준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1977년(丁巳)은 소헌 선생에게는 고희서법전(古稀書法展)을 가진 보람있는 한 해였다. 서법전에 즈음하여 대구mbc TV에서 소헌 선생을 초대하여 모산 심재완(영남대 교수)박사와 함께 ‘서예방담(書藝放談)’을 녹화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이 보람된 한 해를 보내면서 선생은 매일신문사의 요청에 의해 ‘제야감상문(除夜感想文)’을 특집으로 게재하였다.

◇제야유감(除夜有感)

「다시 제야(除夜). 유리창을 후득이는 저 바람소리에 간간이 들려오는 종소리… 아직은 잠자지 않고 묵은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내리고 싶다.

생각해 보면 지난 날은 부끄러움 뿐이다. 열심히 길을 걸어 오기는 했지만 서예의 길은 갈수록 깊고 어렵기만 하다. 그러나 어이하랴 끝내 절정(絶頂)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가는데까지 최선을 다해 걸어가 볼 수 밖에.

서예의 길은 정말 멀다. 상고(上古) 이래의 명현(名賢)들의 서체(書體)를 섭렵하고 6체(篆·隸·楷·行·草·古體)를 공부해야 하며, 그런 기반 위에서만 자기의 서체(書體)가 창출되는 것이다. 그 때야 비로소 창작의 어려운 문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절정(絶頂)에 근접한 경지에 터득하려면 문자 그대로 ‘무소불출(無所不出) 무소불입(無所不入)’의 길에 닿아야하고 나아가서는 신운(神韻)이 내리어 초정신력(超精神力)의 신비경(神秘境)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탈조화(脫造化)의 저 아득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니 앞 길을 내다보아도 그 경지는 내게 닿을까 말까하는 거리에 있다. 때로는 그 경지에 어렴풋이 가는 듯 하면 고작 한 달에 한 두 번, 그것도 닿을까 말까 하는 위치에서 가물대는 그런 것 들이었다. 진정으로 내게도 그 신운(神韻)이 자주 내리어 주고 초정신력(超精神力)의 신비가 와닿아 주었으면 하고 기구할 뿐이다.

올해는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전통(傳統)을 이은 창신(創新)의 작품들이었다. 일반인들과 서예계의 호의를 잊을 수 없지만 웬지 부끄러움을 감출 길 없다. <중 략>.

내 나이 70세. 이 제야(除夜)에는 묵은 껍질을 죄다 벗어 던지고 70을 넘기고 다시 ‘한 살’을 맞는 새해에는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 여태까지의 기반을 디디고 서서 아득한 그 절정을 향해 정진을 해야겠다.

새해에는 내 나름의 진정한 창작품을 가지고 순회전(巡廻展)이라도 열었으면 한다. 각 지방의 서도인들을 만나고 편달(鞭撻)의 말들을 들어 새로운 연구의 자료를 얻고 싶어서이다. 정말 다시 ‘한 살’이 되는 새해를 맞는 이 마지막 날 밤에 무언가의 보람을 뿌듯하게 맛보고 싶다. <서예가>」 (1977.12.31. 매일신문). 이상은 소헌 선생의 1977년(丁巳) 제야감상문(除夜感想文)이다.

무오(戊午) 1978년의 새해가 밝았다. 소헌 선생은 작년(昨年) 고희(古稀,70세)를 지내고 첫 한 해를 맞은 것이다.

78년 4월에는 제11회 봉강연묵회원전(1978.4.29~5.5)이 대구시립도서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52명의 회원작품 88점이 전시된 대형의 회원전이었다. 소헌 선생의 찬조작품은 10곡병 「唐詩(당시)」와 횡액 「遺子千不如敎子一藝(유자천영불여교자일예)」을 출품하였다.

한편 봉강연묵회는 회세(會勢)가 대형화 됨에 따라 회(會)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40세를 기준으로 하여 분회(分會)를 해서, 40세 이상의 회원을 임지회(臨池會)로 하고 40세 이하의 회원을 필한회(筆翰會)로 나누어 활동하기로 했다. 임지회장(臨池會長)엔 우상홍씨, 필한회장(筆翰會長)엔 양태지씨가 선출되었다.

봉강연묵회 임지회원전(臨池會員展,회장 우상홍)은 대구시립도서관(1978.10.6~10.11)에서 열렸다. 출품자는 김세헌, 고의환, 김문성, 안영환, 김영근, 박선정, 박기조, 김대환, 김종식, 이삼달, 오의환, 우상홍, 류준규, 이태운, 박희동, 김상은, 정휘영, 정휘탁, 김재완, 신 강, 배병선, 이정배, 현치덕, 서찬호, 김영훈, 김선희, 박정자 이상 27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작품 수는 48점이었다. 소헌 김만호 선생의 격려작품 횡액 「老子語(노자어)」가 출품되었다.

3주일 후(1978.11.3~11.8)에 봉강연묵회 필한회원전(筆翰會員展,회장 양태지)이 역시 대구시립도서관에서 열렸다. 양태지, 류영희, 김금자, 김기탁, 이상태, 송의용, 김정자, 박경숙, 이화선, 정문현, 박영석, 전진원, 류영숙, 류동하 ,문병권, 최경란, 임영희, 유명희, 신원일, 이혜옥, 강명숙, 류재학, 김진혁, 이석희, 김일명, 최금순, 이옥희, 신명숙(28명)의 작품 55점이 출품되었다. 임지회(臨池會)의 담운 고의환, 청사 박선정의 작품이 찬조로 출품하였고, 소헌 김만호 선생의 격려작품 횡액 「孟子 文公章(맹자등문공장)」이 출품되었다.

소헌 선생은 1978년(戊午) 10월 22일(음 9.19) 71세 생일을 맞게 되자 그동안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외우(畏友)들의 고마움을 그냥 넘기기가 힘들었다. 이 분들을 일일이 초대하여 중화반점(中華飯店) 만리장성(萬里長城)에서 회합(會合)하여 연회(宴會)를 가졌다. 선생의 비망록에는 다음과 같이 메모되어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 회합(會合) 친우(親友).

나지강(80), 이수기(76), 김정환(76), 허 읍(76), 김창봉(77), 최장영(75), 강신태(71), 고의환(68), 김병무(71), 안영환((65), 박선정(60), 권혁택(66). 우(又) 조카(姪) 상은, 가아(家兒) 상대, 영태, 영준 참석.

이원우(76), 이수락(65), 심재완(62), 김세헌(76), 이원세(70). 이성렬(75), 김규탁(71) 제씨 유고(有故) 불참(不參)」이라 적혀 있다.

이 회합에서 간산(艮山) 이수기(李守基)선생이 아래와 같은 희수(稀壽) 축시(祝詩)를 병서(竝書)해 왔다.(1978.10.22)

「六子群孫瑟曲又 翁家光景畵粧拳/ 육자군손슬곡우 옹가광경화장권

長城命饌兼仙酒 盡日風流出孝廚/ 장성명찬겸선주 진일풍류출효주

祝 素軒金書伯 稀壽朝 戊午菊秋/ 축 소헌김서백 희수조 무오국추

大德山房 艮山 小弟 李守基竝書/ 대덕산방 간산 소제 이수기병서」

해석하면

“여섯 아들과 후손들은 거문고 곡조와 같이 화합하고,/ 그대 집의 광경(光景)은 그림 단장하듯 정성스럽구나./ 장성(長城)같이 오래 살라는 반찬(飯饌)과 신선주 드리고,/ 날이 다하도록 풍류를 즐기는데 효주(孝廚)도 나왔도다./ 소헌 김서백 희수 아침 무오(1978년) 가을에 대덕산방에서 간산 이수기 지어 쓰다”

이 해 11월에는 김영희(金泳喜) 경북대 총장의 회갑을 맞아 아래와 같은 축서(祝書)를 휘호해서 서수생(徐首生 경북대교수)박사 편으로 보냈다.(1978.11.5.)

「祝雪堂金泳喜總長華甲大慶/ 축 설당김영희총장 화갑대경

千年東海漆籌屋/ 천년동해칠주옥

一曲南陵捧酒觴/ 일곡남릉봉주상

戊午十一月五日 素軒金萬湖/ 무오11월5일 소헌김만호」

해석하면

“설당 김영희 총장의 경사스런 화갑을 축하하며/ 천년의 오래된 동쪽 바닷가에 빛나는 집을 마련하니/ 남쪽 언덕에서 비파를 타며 술잔을 드는도다./ 무오(1978년) 11월 5일 소헌 김만호”

김영태 영남대 명예교수(공학박사,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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