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수 경제칼럼] 일자리 정부가 빚은 일자리 참사
[이효수 경제칼럼] 일자리 정부가 빚은 일자리 참사
  • 승인 2019.11.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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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수
전 영남대 총장·경제학 박사
지난 1년 사이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면서 고용의 질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일자리 정부’로 자처하고, ‘비정규직 제로(0)를 대통령 1호 지시 사항’으로 추진해 왔다. 그리고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용량과 고용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노동시장은 정부의 주장 및 정책과 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9일에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조사·근로 형태별 부가 조사 결과’에 의하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2019년 8월 기준 748만1천000명으로 1년 전보다 무려 86만7천명이 증가했다. 이로 인해 전체 임금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정규직 비중도 36.4%로 증가했는데, 이것은 지난해 33.0%에 비해 3.4%나 증가한 것이고, 2004년 37%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에 비해 정규직 근로자는 1천307만 8천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3천명이나 감소했다. 자칭 일자리 정부가 빚은 일자리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통계청과 청와대는 이것은 설문 문항 변경에 기인하므로 전년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19년 8월과 2018년 8월에 조사한 ‘근로 형태별 부가 조사’에서는 설문이 동일했다. 통계청이 동일한 설문 문항으로 조사한 결과를 갖고 통계의 불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2019년 3월, 6월에는 정규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고용 기간을 물었는데, 이때 비정규직이라고 자각한 사람들이 잔상이 남아 있어 이번 조사에서 비정규직으로 답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변명했다. 통계청은 이 숫자가 적게는 35만 명, 많게는 5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사람들이 몇 개월 전의 설문 문항을 기억 유추해서 현재 없는 설문에 답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이것은 정부 통계에 대한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발언이다.

정부는 통계를 정부 홍보 수단으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통계의 면밀한 분석으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올바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황당한 추정 방법을 받아들인다 해도, 비정규직은 전년 동월 대비 최소 40만 명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면서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것은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비정규직 비중이 지나치게 높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trap)이라는 점이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한국보다 비정규직 비율도 낮고, 비정규직 근로자 2명 가운데 1명은 1년 내에 정규직으로 탈출한다. 그런데 한국은 OECD 국가들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은 2배 이상 높고, 1년 후에 정규직으로 탈출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1명에 불과하다.

또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34%가 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들이다. 인적자원의 낭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시간, 돈, 젊은 열정을 투자하여 대학을 나왔는데도 미래에 희망을 갖기 어려운 청년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 여기에 집과 경력까지 포기해야 하는 5포 세대, 여기에 희망/취미와 인간관계까지 포기해야 하는 7포 세대, 드디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 세대라는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합계출산율이 ‘0.977’명까지 떨어져 인구 반감기에 접어들고 있어 나라의 미래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최근에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의 기본 기조를 보면 충분히 예측된 결과이다. 정부는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을 주창하고, 노동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경제 원리에 반하는 여러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해 왔다. 재정 지출에 의존한 정부 주도의 일자리 정책은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 소득 주도형 성장을 내세워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무너지자, 재정지출을 통해 강의실 불끄기, 어르신 쓰레기 줍기 등 단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부 주도로 늘려왔다. 내년에 근로시간 단축이 30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적용되면 일자리 붕괴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비정규직의 본질적 문제는 한국 노동시장의 단층구조에 기인한다. 이효수 단층노동시장론에 의하면, 한국 노동시장은 상위단층, 중위단층, 하위단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상위단층과 중위단층은 서로 다른 입직구(port of entry)로 되어 있고, 단층별로 입직 기준과 입직후 승진 기준이 다르다. 그리고 상위단층과 중위단층 입직에 실패한 사람들이 승진 기회와 고용안정성이 없는 하위단층으로 가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 종사자들이다. 영국, 독일 등에서는 비정규직이 직업탐색이나 직업 경험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상위단층이나 중위단층 진입에 실패한 경쟁력이 없는 노동력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어 낙인효과로 작용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운 함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노동시장의 단층구조를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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