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 스토리' 80년대 대만 젊은이의 권태로운 초상
'타이페이 스토리' 80년대 대만 젊은이의 권태로운 초상
  • 배수경
  • 승인 2019.11.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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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作…국내 첫 개봉
감독 특유 감각적 영상미 복원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도시 속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한 청춘
타이페이스토리
 




영화 ‘하나 그리고 둘’(2000)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대만의 거장 감독 에드워드 양의 ‘타이페이 스토리’(1985)가 34년만에 국내 첫 개봉을 했다. 그동안 저작권 분쟁으로 특별전이나 영화관에서 제한적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영화는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빛과 어둠으로 상징되는 에드워드 양 감독 특유의 감각적 영상미를 그대로 살려 우리 앞에 보여준다. 디지털 세상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날로그 감성이지만 따뜻하기보다는 삭막하고 무미건조하다.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는 2007년 세상을 떠난 감독의 작품 중 ‘공포분자’(198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과 함께 타이페이 3부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그의 초기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들어서며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행되는 8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시대의 변화 속에서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연인 수첸(채금)과 아룽(허우 샤오시엔)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함께 살고 있지만 열렬한 애정관계보다는 지루하고 권태롭게만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삶의 끝에서, 함께하는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연인’이라는 예고편 속 문구처럼 아룽은 과거에 얽매이고 수첸은 현재를 살며 미래를 꿈꾼다. 그런 그들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비단 두 사람의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던 당시의 타이페이는 물론 비슷한 시기를 지나온 우리도 함께 겪었던 고민이기도 하다.

 

 

시종일관 희뿌연 하늘과 담배연기로 뒤덮인 실내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의 우울한 초상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도시의 옥상에서 바라보는 광고판 뿐이다. 34년의 시간이 지난 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그 화려한 광고판이 ‘후지필름’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 젊은이들은 모두 권태롭고 무기력해보인다. 두 연인이 빈 집을 보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슈첸의 새로운 사무실이 될 빈 건물장면으로 끝나는 영화는 그저 쓸쓸한 젊은이의 초상이다.

“넌 너의 동정심만이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다는 동화 속에 살고 있어.” 아룽의 전 여자친구가 하는 말처럼 아룽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옛 친구, 연인 수첸의 아버지에게도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돕지만 정작 연인과 마음을 나누는데는 서툴다. 어긋난 수첸과 아룽의 관계가 다시 봉합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허망한 결말에 이르는 것은 안타깝다.

길거리에 버려진 TV를 통해 환상처럼 보이는 유소년 야구단의 활약상을 바라보며 삶을 끝내는 아룽의 모습은 과거와의 결별을 의미하는 듯 보인다.

아룽 역으로 등장하는 허우 샤오시엔은 우리에게는 감독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자객 섭은낭’으로 2015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그의 젊은 시절 배우로서의 모습도 눈여겨볼만하다.

만들어진지 오래된 영화라 올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5년 작 ‘타이페이 스토리’에서 보여주는 청춘은 현재 대한민국의 청춘의 모습과 겹쳐지며 묘한 동질감을 전해준다.

마치 다큐멘터리 같이 흘러가는 영화, 정적인 화면이 주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는 고개를 떨구고 모처럼 숙면을 취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감독이 그려낸 섬세한 미장센에 감탄하며 그 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에 깊이 빠져들지도 모른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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