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먼저 생각의 깊이를 손동작이 알려 줄 때가 있다.
턱을 괴는 내 버릇을 훔쳐 간
로댕, 지옥의 문 위에 앉아 있어야 하는 그가
어산리 마을 어귀 푸조나무로 앉아 있다.
한 남자의 팔꿈치와 손목 사이가 그러하듯
골몰의 반경이 우뚝해질 때
팔꿈치에서 손목까지의 골밀도에
생각의 제 그림자를 사려 넣는다.
지상의 그대 견딜 수 없었던 비애를
나, 수직 침묵으로 읽고 싶었으나
오래 웅크렸던 나무의 허벅지에
간절함으로 뻗어온 그대 언 팔을 얹었으니
원죄의 문 앞에 세워둔 나 또한
푸조나무 우듬지라 말할 수밖에
잎 버린 채 서 있는 나무에 새 한 마리 얹어둔다.
나약한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로
동구 밖 어슬렁거리는 늙은 개도 살핀다.
홀로 우뚝 앉혀둔 노을 속에서
단단히 움켜쥔 튼 살 발톱의 힘으로
새가 소리 없이 켜는 허공의 현
불끈 뜨겁다.
◇문근영(文近榮)= 1963년 대구출생, 효성여자대학교 졸업, 열린시학 신인작품상(15), 눈높이 아동문학상에 동시 ‘눈꺼풀’ 외 15편당선(16),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나무’ 당선(17),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18),신춘문예 당선자 시인 선 당선,금샘 문학상 당선.
<해설> 사물을 살리고 죽은 자를 살리는 힘, 그것이 창작이다. 모든 문학인과 예술가들이 그렇듯 무에서 유를 이룬다는 것의 경이로움이 창작에서 비롯되는 것. 단순한 조각상 하나로 자아를 읽어내는 시인의 반짝이는 눈을 만난다. -정광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