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세계… 20일부터 소나무 갤러리 정자윤전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세계… 20일부터 소나무 갤러리 정자윤전
  • 황인옥
  • 승인 2019.11.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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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풍경 그린 추상화 30점
불교의 가르침 ‘中道’ 입각한
절제된 형태·중간톤 색 특징
정자윤-작
정자윤 작.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이면 안개를 가르며 산속 암자를 찾았다. 꼬박 1년을 산길을 오르며 사계절 변화하는 숲속 풍경을 온 마음으로 감응했다. 마음의 빗장을 허무는 경이로운 풍경, 코끝을 스치는 나무 내음, 귓전을 파고드는 숲속 생명체들의 싱그러운 노랫소리에서 피안의 세계를 경험하곤 했다. 20대 후반, 작가 정자윤은 수도승을 꿈꾸며 불교와 자연에 심취해 한 세월을 보냈다. 그때 목도했던 숲속 풍경과 불교의 가르침이 절제된 형태와 색채 언어로 표출되고 있다.

작가가 “부처님 법을 따라 사시는 비구니 스님인 일법 스님을 만나 나 역시 그분의 삶을 따르겠다고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며 싱긋 웃었다. “그때 본절에서 스님이 계시는 암자(토굴)로 가기 위해 주흘산 자락을 오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경험했어요. 자연에서 부처님 법을 확인하는 시간들이었어요.”

정자윤 개인전이 20일부터 소나무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수도승의 길을 향해 산길을 오르다 만난 숲속 풍경을 빼닮은 추상 회화 30여점을 건다. 세상 모든 존재를 품어 안듯 꿈틀대는 안개 자욱한 풍경을 변주하는 중간 톤의 색채로 표현하고, 안개 속에서 언뜻언뜻 드러나는 형상을 흩날리는 나뭇잎이나 꽃잎의 형태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작품 속 풍경은 작가가 주흘산 자락을 오르내리며 만났던 숲속 풍경에 이입한 피안의 세계이자 사유의 공간이다.

작가가 “천·지·인 순환세계의 본질에 만큼 성숙되고 충만한 시간이자 공간을 구현하려 한다”고 했다. “부처님법이 오롯이 작동하는 이상세계를 중간 톤의 다양한 색채로 표현하려 했어요. 중간 톤의 색채는 중도(中道)를 의미해요.”

정 작가 작업의 근간은 부처님 법이다. 1년간의 수행 끝에 속세로 되돌아왔지만 그녀의 삶과 예술은 여전히 부처님 법으로 점철된다. 작가가 “예술이 곧 삶”이라는 논리를 폈다. “‘예술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려면 결국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 우리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인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지점이니까요.”

작가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두는 사상은 동양철학의 ‘천(天)·지(地)·인(人)’ . 만물을 구성하는 하늘(부처님 법)과 땅(자연), 사람(인간세상)의 관계가 평등하게 순환한다는 가르침을 작품에 구현하고 있다. 삶의 무상함을 들판에 무상으로 흩어지는 나뭇잎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말없이 품어 안는 자연의 포용력과 우주를 주재하는 부처님법이 순환하는 우주의 원리를 중도의 개념으로 풀어낸다. 

정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 나라는 존재마저 잊을 수 있는 무아지경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예술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이라고 설명했다. “중도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非有非無), 동시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亦有亦無)이 됩니다. 저는 그 세계를 제 화폭에 담아내 왔고, 그 안에는 온 우주가 담겨있죠.”

지금은 중도의 세계를 추상으로 표현하지만 이전에는 부처님이나 사찰 풍경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구상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두 작품 간에 화풍의 변화가 진행됐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불교철학이다. 작가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완성하려는 태도를 오롯이 견지하고 있다. 그림 자체보다는 그리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적 태도 또한 구도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녀가 “작품 속 풍경은 자전적(自傳的) 표현”이라고 했다.

“수도승으로 살지는 못했지만 2년 과정의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포교사 고시를 쳐서 포교사(법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공부와 실천을 병행하며 불교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어요. 저의 그런 삶의 태도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경북대학교 예술대학교 미술학 박사 출신으로 17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자윤 개인전은 30일까지. 053-423-118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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