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판력(旣判力) - 모순금지의 원칙
기판력(旣判力) - 모순금지의 원칙
  • 승인 2020.01.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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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대구 형사·부동산 전문변호사


민사 사건에서 한번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면 그 내용에 대하여 판결과 다른 주장을 할 수 없는데 이를 기판력이라고 한다. 판결이 선고, 확정되면 재판을 받은 승소자와 패소자 및 재판을 한 법원은 그 판결의 내용을 존중하여야 하고 후일 다시 재판이 열릴 경우에도 종전 판결 결론과 모순되는 주장 및 결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재판을 하면서 종전 판결 결론과 다른 판결이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게 되며, 법원이 되풀이하여 같은 사건의 처리를 해야 하는 낭비뿐만 아니라, 특히 승소당사자가 모처럼 소송을 수행하여 승소를 얻은 것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A는 B를 상대로 돈 1천만원을 현금으로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았고 B가 돈을 갚지 않자 소송을 하려고 하였으나 차용증을 분실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B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고, 소송에서 증거부족으로 패소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이사를 하면서 우연히 당시의 차용증을 발견한 A는 다시 B를 상대로 소송을 하였고, 이번에는 차용증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이러한 경우 법원은 차용증이 있어도 다시 A에게 패소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 이유는 같은 내용의 소송이 이전에 벌어졌고, 그 소송에서 A가 패소하였으므로 그 패소판결의 내용과 다른 판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사판결문의 구조는 크게 ‘판결주문’과 ‘판결이유’로 나누어지는데 기판력은 판결주문에 생긴다. 금전청구소송의 경우 ‘돈을 지급하라’ 또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것이 판결주문이고, 판결이유는 위와 같은 주문의 결론이 내려진 합리적인 사유를 기재하여 놓은 부분이다.

기판력은 실제 민사소송에서는 매우 어려운 법률이론이다. 따라서 ‘과거에 비슷한 내용의 재판에서 내가 패소하였으므로 어차피 새로 재판을 걸어도 못 이길 것이다’라고 미리 짐작하여 권리를 포기할 필요는 없고 반드시 변호사와 상의하여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여야 한다.

A가 B에게 돈을 빌려준 후 돈을 변제받지 못하자 B를 사기죄로 형사고소하고 사기로 인한 손해배상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A는 현금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받았지만 그 차용증을 분실하였고, 결국 수사기관은 B가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고 인정하여 사기고소에 대하여 무혐의 처리하였고, 민사재판에서도 사기가 인정되지 않아 A가 패소하였다.

나중에 차용증을 찾은 A가 다시 B를 상대로 ‘사기로 인한 손배배상소송’을 제기하면 종전 재판과 100% 동일한 재판이므로 승소할 수 없지만 ‘대여금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종전 민사소송에서는 대여금에 해당하는지는 재판한 적이 없고 오직 B가 A를 상대로 사기행위를 하여 손해를 입혔는지만 재판한 것으로 이론상 다른 재판이기 때문에 새로운 소송에서는 A가 승소 가능한 것이다.

A는 자신 소유의 토지에 B가 무단으로 건물을 지어 사용하였으므로 건물 철거 및 토지 부당사용에 대한 월세 상당의 부당이득을 지급하라고 소송하여 건물 철거 및 월 3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위 판결 확정 후에도 B가 여전히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고, 한편 A는 철거판결을 받았지만 건물 철거를 위하여 법원에 미리 납부할 강제집행 비용이 부족하여 건물 철거를 시키지 못하고 월 30만원 씩 받으면서 기간이 경과되었다. 그런데 이후 갑자기 물가가 폭등하여 비슷한 인근 토지들의 월세가 300만원으로 치솟았을 경우 종전 소송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었음을 이유로 월세를 더 올려달라는 소송이 가능하며 그 소송은 새로운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또는 종전 소송을 변경하여 달라는 변경의 소로 가능하다.

위 사례들은 아주 예외적인 내용이고 기본적으로는 종전 판결의 결론과 모순되는 새로운 판결을 하여야 달라는 소송은 절대로 승소할 수 없다.

정치세계에 기판력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검찰 독립과 개혁의 핵심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가 어느 날에는 살아있는 권력을 너무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문제 삼으니 정치세계에서는 ‘기판력’(모순금지의 효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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