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하루
작심 하루
  • 승인 2020.01.2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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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와 관련되지 않은 즉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해야할 것들은 내 혼자서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는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일들은 변수가 너무 많다. 새해 첫 날을 보내고 벌써 지쳤다.

홍희는 사주를 보니 '준법정신이 너무 투철하다'고 한다. '너무'라는 말이 들어가 약간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긴 하다. '꽉 막혔다, 융통성이 없다. 고지식하다. 너무 원리원칙이다' 등의 말처럼 말이다. 남이 답답해할 수도 있겠고, 자신도 재미없는 사람 같이 느낄 때도 하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힘들 때도 있어 틀을 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길게 봤을 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이익이다. 사람관계에서도, 일에서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안일이나 사람관계나 일에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원칙에 맞게 수행하려고 한다.

사람과 관계되지 않는 집안일, 직장일은 한 만큼 결과가 돌아온다. 청소를 하면 집안이 상쾌하고, 빨래를 해서 널고 개면 깨끗한 옷이 옷장에 쌓인다. 화장실 묵은 때를 솔로 박박 문지르면 새 집으로 이사왔을 때처럼 기분이 좋다. 직장일도 쌓인 서류들이 정리되고, 복잡하던 일들도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 자신이 시간을 투자한 만큼 결과가 돌아온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오직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쓴 만큼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사람'이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직장에서는 소위 '사내정치'라는 것이 있다.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냥 사람들끼리 '무리'를 만들고 인간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인간관계'에서 받는 것이 크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짓고 소통한다. 회의할 때도 미리 자기들끼리 회의를 해서 어떤 얘기를 할지 어떤 의견을 낼지, 찬반을 할지 등을 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몰고 간다. 자기네 무리 안에 있는 사람 편을 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깎아 내린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아도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수다를 떨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무리를 짓는다. 자기네들끼리 낄낄 거리고 히히덕 거리고, 한 무더기의 꽃을 사서 자기무리에게만 나눠주며 '영역표시'를 한다. 점심밥을 먹을 때에도 무리 밖의 사람은 유령 취급한다. 있는지 없는지 아예 무시하며, 말도 섞지 않는다. 그래서 비참한 마음이 들도록 하고,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오죽하면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만들어졌겠나. 서로 동등한 동료관계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몇 명이 밀착관계를 이용하여 무리를 짓고 끌어들이거나 배척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리들과는 시간을 투자해도 온전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집에서는 '주부'라는 위치가 자기의 시간과 힘을 쏟은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같다. 가족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가족들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각자가 자기의 역할을 잘 해주어야 하나라도 주부의 일을 덜텐데, 오히려 자기들은 집안일도 배제되고, 서로 관계를 위해 참고, 양보하고, 배려하지 않고 주장만 하면서 '주부'라는 이름을 가진 홍희에게만 모든 것을 떠맡긴다. 주부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노력하지만 잘 따라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새해 첫날부터 삐그덕 거리는 불협화음을 혼자서 감당하려니 힘들다. 사람과 관련된 일들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자기들은 변하지 않으면서 나만 노력한다고 될까? 그만두고 싶다. 사람관계. 마음에 맞는 사람과만 잘 지내며 살자고 직장에서는 결심했고,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그래도 될까? '투철한 준법정신'을 좀 버리면 될 것도 같은데. 어떡하면 좋을까? '주부'라는 이름을 버리고 가족에게서 좀더 '나 자신'에 집중할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음력 새해 둘째 날을 보낸다. '남편과 자식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올 해 화두로 삼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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