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날 구부러진 등허리를 어루만지는 바람의 손길을 느꼈다 지난겨울 삭바람이 떨구어 낸 자리마다 진물이 흐른다 휘고 굽어 갈라터진 한 획마다 내 뜻대로 그었던 것은 아니지만 깊은 가을날까지 亂筆을 그어대곤 했었다 공허한 마음 아득하여 옹색한 협착으로 길을 찾기고 했었다 이제 또 다시 어쩌자고 벽과 벽 그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는가
여러 날 달빛 올올히 벽면에 스며들었다 툭툭 불거지던 기억 위로 별빛이 내려앉는다 뿌리의 잔금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또 다시 솟구치려는 핏톨의 흐름은 바람에, 빈 가지로 붙은 몸의 관절 하나하나 숨구멍 하나에도 흐른다 등허리에 힘줄이 솟고 미세한 근육의 떨림을 온 몸으로 느낀다 별빛에 반사된 밤하늘 초록의 등허리가 매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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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경남마산출생, 낮은 시 동인.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원, 현) 한시문협 청백리문학 연구위원
필사적이다. 담쟁이가 낮게 포복하며 기어오르는 모습은 포기할 줄 모르는 근성의 표상이다. 감히 발붙이기도 민망한 미세한 틈마저 촉수같은 발들을 밀어 넣어 하늘을 향한다. 겨울이 오면 짊어졌던 무게를 잠시 내려두었다가 봄이 오면 다시 굳게 일어서는 담쟁이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선지자다.
-해설 김연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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