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그늘의 집
<좋은시를 찾아서> 그늘의 집
  • 승인 2010.05.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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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젖은 신발은 마르지 않았다 어김없이 일요일은 온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젖은 신발들이 웅얼거리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비가 오네요
(안경 너머로 비는 보이지 않았다 이 거리에는 비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지 않게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비는
벌써부터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서점에서 시집코너가 사라진 것처럼)
네 안녕하세요
비가 올 때 거리는 온통 그늘이었다
나는 그늘이 좋았다
건조하지 않아서 좋았고 울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듯 했다
신문들도 그늘에 대해서는 한 줄의 활자도 내주지 않았고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조차 그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나이 예수는 누구에게 그의 그늘을 말할 수 있었을까
혼자서 제자들과 다녔던 사나이 예수는 외롭다고 말하지 않았다
십자가를 메고 갈 때 그는 두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남겨둔 제자들 때문에 눈물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는 여인들이 이쁘다고 나는 사내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늘 아래 누워있는 축축한 기억처럼 베드로도 나도 예수의 그늘을 좋아했다
그늘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젖은 신발을 벗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 사이로 나의 그늘이 보인다
슬퍼서 울어보았다
아내는 내가 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눈물이 내 몸에서 나오는 것처럼 슬픔은 내 몸에서 살아간다
생각도 내 몸일까 그늘은 내 몸 어디일까
내 몸의 뿌리는 하얀 뼈 조각이 아닐 것이다
내 몸의 뿌리는 그늘 위에 서 있는 눈물일 수도 있다
(그럼 슬플 때마다 내 몸은 마르지 않은 뿌리를 내뱉고 있었단 말인가)
탄성을 누르며 냉장고에서 블루마린 을 꺼내어 내 몸 속으로 흘려보낸다
부디 해양심층수 같은 청정 눈물로 자라기를 바래보았다
내일은 젖어 있는 신발도 그늘 아래서 꿈을 꿀 것이다

주석- 블루마린: 음료회사에서 판매하는 생수. 동해에서 취수한 프리미엄
해양심층수라고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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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경북김천출생, 낮은 시 동인.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원, 현) 한시문협 이화세계문학 연구위원, 시집: 새벽3시에 대하여 (1993년)외 5권

사람들은 밝은 빛 아래서 안주한다. 하지만 마음이 여린 이는 모든 사람이 빛을 향할 때 그늘을 주시한다. 그늘 속에서 잊혀져가고, 그 소외된 변방을 바라보는 가슴은 눈물을 생산한다. 가식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눈물로, 모든 그늘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날이 오길 시인은 꿈꾼다.

-해설 김연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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