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굽이마다 시 아니랴
긴 물길 두루마리에 바람으로 시를 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서태수=《시조문학》천료, 《문학도시》 수필, <한국교육신문> 수필 당선, 수필집 『조선낫에 벼린 수필』 외, 낙동강 연작시조집 『강이 쓰는 시』 외, 평론집『작가 속마음 엿보기』, 낙동강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부산수필문학상 외
<해설> 풍폭은 구름을 헤아리지 못하고 벽력은 음양을 가르지 못한다. 인생은 가시 끝에 묻어 있는 꿀을 핥는 것과 같다. 인간의 감정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세계다. 삶이 편리해질수록 인간은 더 고독해졌다. 인생에서 최고의 기쁨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인생을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등산으로 여기면,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 서 보내게 된다. 산 정상에 오르기까지 노정이 의미 있는 진짜 인생이다.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삶도 충분히 의미가 부여되고 남음이다. 만약 인생이 선이라면 인생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우리 인생은 점의 연속이어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라고 한다. 하여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풀릴 거라 생각하는 것은,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어느 때라도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빨리 가다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라,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사람은 현재 생각하거나, 상상하거나, 행동하는 것보다 잠재력이 훨씬 많다. 비록 홀로라도 청청[靑靑]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진정하게 세계를 품고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함께 사는 시작이 되고 모든 것에 열린 삶이 된다. 앞으로는 이유 없이 안겨오고 이유 없이 떠나가는 것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기로 하자. 해가 바뀔 마다 우리들의 삶도 매년 다시 피어나는 봄꽃 같았으면 좋겠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