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울어라,
아직 세상물정 모를 때 터져 나오는 대로 울 수 있을 때
울어라 아가야, 마음 놓고 울어라, 울고 싶어도 울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 곧 온단다.
울어라, 태어남을 울고 네 까닭을 울어라.
차고 저린 장소와 짐작 못할 기후를 울고
낯선 이웃과 어색한 부딪힘과 사방천지 닫혀 있는 부자유를 울고
음흉한 눈빛들과 알 수 없는 내일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먼 길을 울어라.
지금 소리 내어 울지 않다가, 그것이 오래 묵으면,
깊이 도지고 박혀서 검푸른 문신이 될 것이다.
때가 비끼면 너는 겁쟁이, 너는 못난이
병약한 그늘에 팽개쳐진 도망자가 될 것이다.
아가야 울어라, 우는 네 곁에서 나도 박자를 맞추어 타령을 읊을 것이니
내가 진작 너였다면 이렇게 부엉이처럼 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우는 네가 부럽다.
아가야 울어라,
악을 쓰며 울어라
울 수 있을 때 마음 놓고 울어라.
◇이향아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오른 후,『별들은 강으로 갔다』등 시집 23권.『불씨』등 16권의 수필집,『창작의 아름다움』등 8권의 문학이론서를 펴냄. 시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아시아기독교문학상, 신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함. 현재,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문학의 집· 서울> 이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해설> ‘울어라’의 반복에서 오는 운율이 바람벽을 뚫을 것 같은 아주 묵직한 침묵의 청초함이 번득인다. 시어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은 그 시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었을 때다. 여기서 시인의 역량이 발휘되는 것이다. 시어들이 살아 펄떡펄떡 뛰어야 좋은 시다.
이 시 ‘울어야 아가야’는 그런 면에서는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동음반복으로 시의 울림을 크게 하기 때문이리라. 독자의 심금을 두드리는 것은 이런 시어들의 신선함에서 비록 된다.
아가의 울음에는 순백의 순수함이 있다. 한데 세월 따라 이 순백은 점점 황칠이 되어간다. 감성이 낡아 더는 울음조차 앓음으로 치환되는 화자의 서글픈 오늘날의 자화상 발견에 비감을 느끼게 된다. -제왕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