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을 묵고 살아온 삼대(三代)의 마당가에
황토빛 달이 오른다.
달빛을 받아
퍼렇게 일어서는 시렁 위에 왜낫 끝에
베어져 나간
몇 마지기
피묻은 논배미가 보인다.
토방귀엔
뼈만 남은 허무의 신짝들
한 평생
모랫벌 붉은 언덕 오르내리며
모질게 죽은 넋의 원한도 잊고
엎드려 땀흘리는 잠 속에서
누군가
피어린 달을 찍어내는
시퍼런 낫이 보인다.
▷전북 순창 출생. 1962년 동국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동국대 재학 시『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전율지역(戰慄地域)’이 당선돼 등단.
이 시인은 우리 시단의 60, 70년대에 많은 시를 발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던 시인이다. 우리는 여기 `농부의 집’을 통해 가난과 설움 속에 살아왔던 그야말로 `자갈을 묵고 살아온’ 자자손손으로 이어진 농민들의 가난과 원한을 엿보게 된다.
특히 `토방귀엔 // 뼈만 남은 허무의 신짝들’과 `엎드려 땀흘리는 잠 속에서’ 까지 질곡의 삶속에 배어있던 시퍼런 원한이 이 시에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이일기 (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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