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6·25 한국전쟁
<대구논단> 6·25 한국전쟁
  • 승인 2010.06.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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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흥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2010년 6월 25일은 `6·25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의 아픔과 상처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당시를 겪어 보지 못한 전후 세대로서 전쟁은 책이나 사진 속의 이야기일 뿐이다. `6·25 한국전쟁’에 대한 나라마다 입장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6·25동란’ 혹은 `사변’으로 불리다가 공식적 이름은 `6·25 전쟁’이다. 북한에서는 `조선인민해방전쟁’ 혹은 `조국해방전쟁’이라 한다. 해외에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는 내전의 성격을 강조하였다면,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하면서 자국의 입장을 대변한다.

전쟁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남쪽의 공식적 사망자는 군인 14만 7천 명, 민간인 24만 4천 명, 북한은 군인 29만 4천여 명, 민간인 40만 6천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하였다. 여기서 부상당한 사람 등을 추가하면 약 500만 명 이상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이 숫자는 전 인구의 7명 중 1명이 해당된다. 물론 남한 제조업의 피해는 시설 및 건물의 40% 이상이, 북한의 생산력은 공업 생산액의 36%가 파괴되었다고 조사되었다.

전쟁으로 대부분의 생산력이 파괴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쟁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념과 상관없이 희생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도 후퇴과정에서 많은 주민을 죽였다. 어느 산골의 아주머니가 한손에는 태극기를, 한손에는 인공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사진은 당시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준다. 전쟁은 마을을 학살로 내몰았다.

박찬승(마을로 간 한국전쟁, 돌베개)은 충남과 전남의 5개 마을을 조사하였는데, 전쟁 전후 이 5개 마을에는 대규모의 여러 차례 학살이 좌익과 우익, 지주의 반촌과 소작인의 민촌, 마을과 마을의 갈등, 신분의 갈등으로 자행되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지금까지도 안고 살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임하(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는 그동안 전쟁이 남성과 정치 이해관계가 주된 이야기였다라고 하면서 여기서 탈피하여 여성, 즉 전쟁미망인을 통해 전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미망인(未亡人)’이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못한 아내’라고 정의하면서 전쟁 전후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그는 전쟁과정에서 남편이 사망한 다양한 경력의 전쟁미망인과 그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1920~30년대 태어나, 정신대를 피하려고 10대 후반에 결혼 한 후 전쟁과정에서 남편을 잃었고, 지금 80순의 나이이다. 이들은 전 생애 대부분을 미망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이들에게 전쟁은 인생 전후의 굴곡진 삶이다.

전몰군경미망인회에 따르면 현재 6ㆍ25전쟁 전사자의 부인은 3만 4천 명, 베트남전 등 기타 상이군경까지 합하면 10만 9천 명이다. 이들의 삶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그 고통을 다 이해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굴곡진 삶은 서울의 달동네와 관련이 있다. 서울 대부분의 달동네는 일제강점기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산비탈이나, 제방 둑에 집을 지으면서 생겨났다. 물론 조선후기에도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이 청계천 제방에 토막을 짓고 살았다. 그 정도가 일제시대 들어 더해 갔고, 오늘날 홍제동, 아현동 신당동, 금호동 등지에 토막집이 번창하였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남산 자락의 해방촌(용산동) 등이 형성되었다. 피난민들은 산비탈에 미군부대에서 나온 종이상자, 양철 등으로 무허가 집을 지었다. 이후 이곳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전쟁 전후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달동네는 70년대 상계동, 중계동 등지로 확대되었다가 80년대 재개발 바람으로 점차 개발되기 시작하여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뉴타운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보면 전쟁의 상처와 아픔은 치유된 것처럼 보인다. 일제와 전쟁과정에 생겨난 달동네가 아파트로 변모되었으니 말이다.

올해 6월에는 6·25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많다. 그런데 기존 영화나 TV에서 전쟁을 남북 간 이념의 대립으로 보았다면 `월컴투 동막골’이나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전환이었다. 그런데 올해 드라마 “전우”는 70년대 소대장 나시찬을 생각나게 하고, `로드 넘버원’과 `포화 속으로’는 60년 전 그때를 떠올려 마음 아프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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