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고부열전
다문화 고부열전
  • 승인 2021.04.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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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회사 대표 교육학 박사

"지구가 멸망해도 바퀴벌레와 고부간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동서양 고금을 막론하고 아들을 사이에 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예외가 없다. 요즘은 장서갈등이라 해서 장모와 사위 간의 갈등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 베트남 신부와 결혼한 신랑이 하소연을 했다. 신부가 임신하자, 장인 장모도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 한국에 초청비자로 들어왔다. 신부의 언니인 처형들도 한국인 신랑과 결혼해서 세 자매가 모두 한국에 살고 있다. 막내인 철없는 아내는 사사건건 친정식구들과 상의했다. 육아부터 일상생활 모든 것이 베트남 문화를 따라가게 되었고, 처가의 간섭이 심해졌다.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장서 간의 갈등으로 확대되었고, 가슴앓이를 하던 남편이 처가 식구들의 방식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진정되었다.

오랜만에 ebs에서 방영하는 다문화 고부열전을 봤다. 역지사지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입장을 잘 표현한 프로그램이다. 몇 년 전에 ebs 작가로부터 다문화 고부열전 출연자 추천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시어머니와 한집에 사는 가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의외로 갈등보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사는 가족들이 많았다. 국제결혼 초창기에는 서로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다름에 대한 차이가 실제로 크게 느껴져서 문제도 많았다. 요즘은 정보의 홍수와 정부단체 각 기관의 다문화 감성 교육 등으로 인해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

남남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살아온 환경이 확연히 다른 외국인과의 결혼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것이 갈등을 해소하는 지름길이건대, 개인의 노력에 더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전환과 정부의 체계적인 개입으로 효율적인 다문화 가정의 안정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베트남식 육아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니까 서로 옳고 그름을 주장하지 말고 인정을 해주는 편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들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할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방송에서 가끔은 과장된 설정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있지만, 잔잔한 감동이 따뜻하게 스며들 때가 많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남편을 도우려는 베트남 신부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남편은 육아를 하면서 자신을 도우는 아내를 고마워한다. 하지만, 짠순이 시어머니의 아들도 어머니의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잔소리꾼이다. 수돗물도 적게 틀고 전기도 아끼고, 보일러 불도 아끼라 한다. 독립된 삶에 불안을 느낀 남편은 시댁과의 합가를 제의했고, 시어머니가 개입되면서 고부간에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시어머니는 평생을 남편과 청소부로 일하면서 짠순이라는 별명을 달고 서울의 강남땅에 자리 잡았다. 제주도 여행 한번 못하고 비행기 한번 못 타보았다. 코로나로 해외를 못가니 방송국에서 며느리와 함께 시어머니 고향에 여행을 보내드렸다. 시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어린아이처럼 며느리와의 여행을 좋아했다. 고부간에 평소에 못다 한 속내를 털었다. 젊은 날에 끼니를 걸러 가면서 고생 끝에 가난을 극복한 시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했다. 자신도 가난 때문에 부모형제를 떠나 먼 나라에 와서 사니 공감이 되었다. 착한 며느리와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였다. 분가하기 전에, 시어머니는 베트남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잠옷바람으로 거실에 왔다 갔다 해서 놀랐다고 했다. 잠옷을 겉옷처럼 홈웨어인 양 입고 다니는 그들만의 문화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아버지와 맞담배를 피워도 흠이 되지 않는 것이 베트남 문화다.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외국인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심각한 갈등을 묘사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냇가의 모난 돌멩이가 오랜 시간 비바람에 스쳐 반짝이는 몽돌이 되듯이 다문화 고부간의 갈등도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 된다. 서로의 모난 귀퉁이를 쓰다듬고 안아주면서 동글동글하고 예쁜 가족으로 성숙돼간다. 고부간의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다문화 고부열전' 이 사회에 아름다운 공존의 미덕을 행하는 프로그램이기를 바란다. 이제는 "다문화 고부열전'의 시대가 끝나고 '다문화 고부사랑'으로 제목을 바꾸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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