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4.19혁명 일을 국경일로 경축해야
<대구논단>4.19혁명 일을 국경일로 경축해야
  • 승인 2010.07.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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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 고유의 국경일과 기념일이 있다. 이러한 기념일 중에서 가장 역사적인 날을 골라 국경일로 경축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다섯 개의 국경일이 있다. 3월1일 3.1절은 일제에 항거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날이다. 이를 계기로 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벌였고 일제는 이 저항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살육을 감행했다.

수천 명이 죽고 수만 명이 체포되었다. 연약한 여학생의 몸으로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프린트하여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은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 끝에 죽어야 했다. 지금도 3.1절만 되면 재연행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족적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거행된다. 제헌절은 7월 17일이다. 광복을 이룬지 3년 만에 미군정을 마치고 꿈에도 그리던 정부수립이 된다.

5.10선거로 당선한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한다. 유진오가 대표집필자였던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처음에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정했으나 이승만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대통령중심제로 바뀐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공화국이 되는 기초법률을 만든 것이 이날이며 제헌절로 역사적인 기념을 하게 된 것이다.

광복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36년간의 기나긴 세월 일제에 억눌려 모진 고통을 받은 조선민족이 드디어 광복을 성취한 날이다. 독립군과 광복군의 처연한 투쟁을 통해서 우리 민족은 일제에 항거했다.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애국지사들은 육혈포와 폭탄으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좌진, 홍범도, 이범석 등 만주벌판을 주름 잡던 호랑이들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궤멸시켰다. 이를 복수하려고 정규사단을 투입한 일본군은 청산리 깊은 골짜기에 자기들의 화력만 믿고 쳐들어왔으나 미리 유리한 지형을 확보한 독립군에게 전멸하고 만다.

지금도 청산리 대첩을 기념하는 전적비가 그 자리에 우뚝 서 현장을 찾는 후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이처럼 게릴라전을 계속했던 독립군의 최종목표는 연합군의 일환으로 조국의 상륙작전에 참여하는 것이었으나 갑자기 일본이 항복하는 통에 기회를 잃었다. 임시정부 김구주석이 눈물을 흘리며 참전국이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한 것은 분단 등 조국의 미래를 생각해서다. 8월15일은 새로운 나라의 생일이다.

10월3일은 개천절이다. 단군성조께서 나라를 활짝 여신 날이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에 대해서는 곰의 설화 등을 들어 신화로 격하하는 역사학자들이 더러 있다. 일제의 식민지사관에 쪄든 학설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통 역사는 단군의 개국을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개천절 행사가 다른 국경일과 달리 범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행사가 되지 못하고 조촐하게 치러지는 것은 안타깝다. 많은 나라들이 건국신화를 가지고 최초의 건국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단군을 교조(敎祖)로 하고 있는 대종교를 질시하는 타종교의 폄훼도 개천절의 성대한 기념을 방해하는데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한글날이 있다. 10월9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이다. 한글은 한민족의 긍지를 드높인 문화국의 상징성을 가진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가장 읽기 좋고 쓰기에 좋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라고 지시한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문화유산이다.

한글이 있음으로서 우리나라는 문명국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세종대왕의 창조와 창작에 대한 위대한 결단을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라는 이름은 서울의 가장 중요한 거리의 명칭이며 남극에도 세종기지가 있다. 심지어 수도분할의 전초가 되고 있는 말썽 많은 이름도 세종시로 정해졌다. 세종시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참으로 세종대왕께서도 어리둥절해 할 것 같다.

이처럼 국경일의 역사적 의미는 모든 국민이 수긍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51개의 법정기념일이 있다. 4.19혁명 기념일도 그 중의 하나다. 모두 나름대로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거나 미래를 지향하는데 큰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우리는 4.19혁명의 의의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4.19혁명은 5천년 역사상 최초의 민중혁명이다. 왕조시대에도 크고 작은 저항운동이 있었다.

신분제도나 가렴주구를 성토하려고 죽창을 꼬나들었다. 그러나 민중에 의한 저항은 오직 4.19혁명뿐이다. 동학혁명은 큰 의의를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왕조를 뒤집어엎지는 못했기에 아쉬움을 남겼다. 프랑스대혁명이나 볼쉐비키혁명은 세계사를 다시 쓰게 했지만 4.19혁명 역시 우리 역사를 고쳐 쓰게 만들었다.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운 이 혁명에서 무려 180여 명의 희생자와 1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혁명이었다고 기록한다. 영원히 기념할 민중승리의 날이다. 혁명 기념일을 국경일로 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할 일 아니겠는가. 4.19혁명을 국경일로 만들어 세계만방을 향하여 우리의 기개를 보여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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