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별이 지다
[문화칼럼] 별이 지다
  • 승인 2021.08.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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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금세기 최고의 드라마틱 테너' 주세페 자코미니(Giuseppe Giacomini)가 며칠 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81세다. 최근까지도 성악가들 사이에서 "자코미니, 아직도 무대에 설 걸--- 아니, 요즘은 연주 안 한다던데. 그래도 아직 소리는 여전 할 거야"라고 회자 되었다. 왜냐하면 자코미니처럼 소리가 무거운 성악가는 통상 나이 들면 노래가 일찍 힘들어 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이런 법칙에 역행(?)했다. 물론 전성기 때와 다르긴 하지만 70대 후반, 여든의 나이에도 그는 젊은 소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소리가 더 깊어졌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타계 소식에 많은 팬들이 슬퍼하고 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성악가였지만 유난히 한국에서 노래할 때 항상 베스트였다. 그래서 한국 팬들과 자코미니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오페라 '투란도트' 내한 공연이 있었다. 로린 마젤 지휘, 투란도트 공주 역 '게나 디미트로바' 칼라프 왕자 역에 '주세페 자코미니' 등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당대 최고의 드라마틱 소프라노 디미트로바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그러나 단연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건 자코미니였다. 대단히 힘 있는 그의 목소리는 처지지 않고 총알처럼 뻗어나가는 소리여서 깜짝 놀랐다. 한마디로 엄청난 대포를 소총처럼 민첩히 발사하는,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소리였다. 아무튼 그날의 공연은 완벽했다. 후일담으로 듣기로 자코미니 자신도 특별히 만족해한 공연이었단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침 출근 전(당시 나는 대구시립합창단원 이었다)우연히 펼쳐든 신문에 자코미니 공개레슨 기사가 났다. 급히 연가를 쓰고 서울로 향했다.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는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로 가득 했다. 공개레슨이 끝난 후 객석의 한 이탈리아인(스칼라 극장 합창 단원으로 기억됨)이 "지금까지 노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했으니 이제 당신이 직접 증명해 달라"고 장난스럽게 요청했다. 객석의 엄청난 호응에 자코미니는 오페라 아리아 2곡을 내리 불렀다. 2시간 넘게 말을 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바로 어려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는 것이 놀라웠다. 특히 2천 석 가까운 큰 공연장을 완전히 꽉 채우는 자코미니의 엄청난 성량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 인간의 목소리가 이럴 수도 있구나."한마디로 충격이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기념하여 로마에서 3테너 콘서트가 열렸다. 3테너라는 상품을 만든 기념비적 공연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3테너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는 더욱더 전설이 되었다. 물론 파바로티는 그 이전부터 20세기의 슈퍼스타로서 그만의 확실한 영역이 있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악가였다. 하지만 대중적인기와는 별도로 성악가에게 경배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주세페 자코미니'였다. 워낙 크고 무거운 소리여서 그런지 그는 무대에서 음 이탈이나 갈라진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과 특히 성악가들은 그의 목소리에 열광한다. 제대로 났을 때는 그 누구도 그에 비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1년 내한 공연이 그랬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독창회에서 그는 초반 컨디션 난조를 보였지만 그 순간이 지난 후 완벽했다. 공연 후 모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죠, 그의 목소리는 거룩해요."

자코미니와 다른 성악가를 구별 짓는 잣대 중 하나는 소리의 거룩함이다. 그가 95년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 '파도바' 인근 작은 마을 성당에서 녹음한 성가 곡 음반을 들어보면 그의 목소리가 이런 종교 곡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오페라 무대의 큰 별 주세페 자코미니의 음악적 완성도는 종교 음악에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가 비록 오페라 공연 시 컨디션 난조를 종종 보였다 하더라도 최고의 테너라는 것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음은 음악적 완성도에 있다. 그의 음악은 작곡가가 원하는 것을 언제나 정확히 표현한다. 넘치지 않고 균형을 잘 유지하면서도 고귀하게 노래한다. 이런 점이 그를 오랜 세월동안 정상에 서 있을 수 있게 했다고 본다.

그의 특별함은, 그가 노래하는 방법은 자코미니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그러했지만 그의 메소드를 따라하노라면 처음 얼마동안은 아주 그럴 듯한데 시간이 지나면 점차 소리가 무거워진다. 그래서 결국 큰 난관에 빠지고야 만다. 그러나 이런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프란체스코 타마뇨' 이후 진정한 드라마틱 테너는 자코미니가 유일 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그와 같은 성악가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무대에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달리 소박하고 넉넉한 인품의 별은 더 만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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