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을 막으면 민주주의가 시든다
정부 비판을 막으면 민주주의가 시든다
  • 승인 2021.08.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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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상환-변호사
정상환
변호사
전 인권위 상임위원
현 정부 들어서 정부를 비판하는 전단지 등을 뿌린 행위를 건조물침입으로 처벌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비상계단에서 ‘문재인 독재정권은 민주화 탄압을 즉각 중단하라’는 취지의 내용이 쓰인 전단지를 뿌린 후 건조물침입으로 기소된 보수적 대학생 단체 회원 A씨에 대해서 1심 재판부에 이어 2심 재판부도 5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몇 가지 점에서 이번 판결은 표현의 자유의 핵심인 정부 비판의 자유를 침해한 부끄러운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우선 경찰이 A씨가 뿌린 유인물의 내용 때문에 입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유인물이 문제라면 정식으로 명예훼손으로 입건해야지 건조물침입으로 입건한 것은 비겁하다. 그를 처벌하기로 정해놓고 견강부회한 것이다. A씨가 정부를 찬양하는 유인물을 뿌렸다고 해도 그를 건조물침입으로 입건했겠는가?

건조물침입죄는 그 행위만 가지고 판단해야지 유인물의 내용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A씨가 들어간 프레스센터는 재판부도 인정하듯이 일반에 공개된 장소이며, 출입자에 대한 관리나 제지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라면 건조물침입죄가 인정될 여지는 매우 좁아진다. 재판부는 A씨가 명시적 또는 추정적 승낙을 받지 못했다고 판단하였는데, 일반에 공개된 건물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란 범죄의 의도를 가지고 건물에 들어가거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건물을 손괴하거나 절도의 의사를 가지고 들어간다든지 아니면 폭력적으로 건물에 들어가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일반에 개방되지 않은 특정 사무실에 들어가는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본건의 경우 A씨는 오후 3시에 프레스센터에 들어가서 조용하게 20층 비상계단에서 아래로 유인물을 뿌렸다. 그것이 유죄라면 그가 정부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리지 않고 20층 비상계단에서 아래를 구경하다가 내려왔다고 해도 유죄가 되어야 한다. 재판부는 “(50만원이라는) 벌금 액수가 대학원생인 피고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억압해 해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는데,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이 침해되었는지 여부를 따지는 중대한 사건에서 50만원 정도의 벌금을 선고한다고 해서 기본권이 억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박약한 논리에 대한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현 정부 들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판결이 선고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에도 지방의 모 대학 단과대학 건물 내부 등에 대통령을 비방하는 대자보를 붙여 건조물침입으로 기소된 학생에 대해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학교 직원이나 학생이 아니라는 점과 캠퍼스 내 건물이 24시간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장소는 아닌 점 등을 비춰봤을 때 건조물에 침입했음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학교 측은 피고인이 학교의 의사에 반하여 침입한 것이 아니고 처벌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진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피고인이 명시적 또는 추정적 승낙이 없이 들어갔다고 인정한 것이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건물에 들어가서 정부를 비방하는 유인물을 뿌린 사람에 대해 건조물침입으로 유죄판결이 선고된 적이 있다. 다만 그 사건의 경우 그 건물 옥상이 일반에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위 사건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은 시민이 정부를 비난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이다. 아무리 그 비판이 근거도 없고, 다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라도 그럴수록 더 보호하여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대원칙에 선다면 일반에 공개된 건물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유인물을 뿌린 행위를 두고 건조물침입으로 입건하여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선고해서는 안 된다. 벌금 5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가 위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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