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개념없는 사교육정책:`사교육’을 알어?
<대구논단>개념없는 사교육정책:`사교육’을 알어?
  • 승인 2010.08.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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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대구대 사회교육과 교수

“사립학교와 같이 법인이나 개인의 재원에 의하여 유지되고 운영되는 교육”이 뭔지 아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한 분도 이것이 `사교육’이라고 대답하시질 못했다. “후유~” 안도의 한숨이 입술을 넘어 흘러나왔다,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니구나!’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 사전에서 `사교육’의 정의를 위와 같이 발견하고 놀랐다. 인터넷 지식의 한계를 의심하며 당장 도서관에 가서 사전들을 들추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러웠다. 소위 `사교육 열풍’에 수십 년간 온 나라가 난리를 치르고 있지만 우리는 정작 사교육이 뭔지나 알고 있는 걸까?

혹자는 사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할 뿐이며, 사회적으로는 사교육에 대한 통념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사전 편찬자들의 게으름(?)을 꼬집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별 불편 없이 사교육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맞는 말로도 들린다. 하지만 실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먼저 우리의 일상을 살펴보자. “귀하의 가정은 지난 달 사교육비로 얼마를 지출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장 자녀들의 학원비나 개인교습비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판단이 쉽지 않다. 참고서를 산비용은 포함해야 할 것인가? 피아노와 태권도 등 예체능 과외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나아가서 학부모 자신이 골프나 꽃꽂이를 배우기 위해 돈을 지출한 경우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다음으로 전문적인 조사·연구의 통계를 비교해보자. 각양각색이다. 정부는 기관별로 연구소는 연구소 나름으로 같은 해의 사교육비 총계를 다르게 발표한다. 극단적인 일례는 교육부가 6조 7천억 원(99년)이라고 발표한 바로 그 해 한국산업연구원은 30조 1천억 원으로 조사하여 약 4.5배의 차이가 났다. 마치 전혀 다른 나라를 조사한 게 아닌가 의심을 자아낸다.

원인은 사교육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통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교육의 범위를 결정적으로 획정하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개념이다. 사교육의 개념이 불명확하면 사교육의 범위가 들쑥날쑥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고무줄 통계’로 귀결된다. 이렇게 해서 사교육의 실태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런 문제가 부질없는 개념적 유희라고 손사래를 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교육의 개념문제는 교육현실을 이해하고 대책을 생각하는데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주춧돌의 하나다. 불명확한 개념은 정책적 혼란을 초래하여 현실적으로 당혹스런 결과를 낳게 된다.

현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소위 `방과후 학교’를 보자. 정규 수업 후 학교에서 과외교습을 계속하면 학생들이 사설학원에 그만큼 갈 수 없다는 것은 뻔 한 일이지만, 얼마만큼 사교육 대책일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방과후 학교’가 공교육의 영역에서 진행된다 할지라도,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학생(학부모)이 교육비를 대부분 부담한다. 따라서 교육재원의 출처를 보면 사교육과 별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방과후 학교에서 가르치는 외부 강사가 교사자격증도 없다면, 공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또한 방과후 학교의 교육내용도 공공정책의 결정과정을 통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학부모)과 선생님(학교)이라는 수요자와 공급자에 의해 결정되기에 사교육 시장의 성격을 띤다.

`방과후 학교’의 교육비를 공교육 통계에 집어넣고 사교육비 지출을 줄였다고 성공적인 정책효과를 운운하는 것은 개념 없는 교육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정규수업 후 학교를 학원으로 만들어 놓고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현수막을 교문 높이 걸고 있는 진풍경은 서글픈 아이러니의 짙은 그림자를 우리 교육 현실에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물결 속에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교육의 개념은 확대일로를 걷고 있다. 교육의 유비쿼터스 시대를 맞아 교육정책은 시대에 맞는 개념정리가 요구된다. 태어나서 기고 걷는 것을 배우는데서 시작하여 노년층의 재교육에 이르기까지 평생에 걸친 교육과정 가운데 공교육이 차지하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공권력의 영향권 밖에 있는 사교육의 방대한 영역 가운데 시장논리에 따라 사교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부문도 일부에 불과하다. 더욱이 입시를 위한 사교육은 그 중에 일부일 뿐이다. 사교육과 `전면전’을 벌여서 사교육을 `근절’하고나면 평생교육에 무엇이 남아있을 것인가?

공자는 정치의 시작이 `이름을 바로잡는 것(正名)’에 있다고 했다. 사교육의 개념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교육의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개념 없는 사교육 정책이 난무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공자의 정명론이 더욱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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