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게조차 부끄러워 할 일은 하지 않는다
그림자에게조차 부끄러워 할 일은 하지 않는다
  • 승인 2021.12.1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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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예임회 회장
전 중리초교 교장
며칠 전 숲길을 걷기 위하여 사천시 ‘봉명산시립공원’에 갔다. 그곳에는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다솔사(多率寺)가 있었다. 이 사찰은 신라 22대 지증왕 때 창건한 사찰이었다. 다솔사 숲길에는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가 있었다. 고종황제의 ‘다솔사 혈(穴)자리에는 무덤 쓰는 것을 금지함을 표한다.’며 내린 어명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또 다솔사에는 유명한 분들이 머물거나 다녀간 곳이다. 3·1 운동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3장’을 초안 했던 만해 한용운이 12년간 은거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해는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만당(卍黨)’을 조직하여 대중계몽 운동과 불교유신운동을 하였다.

만해가 거처하던 요사 안심료(安心寮)에는 1934년에 김동리도 함께 기거하였다. 김동리는 만해, 효당, 김범부(김동리 친형) 세 사람이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한 승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영감을 얻어 역작 ‘등신불(等身佛)’을 썼다고 한다. 바로 다솔사가 공간배경이고 ‘등신불’의 산실이 ‘안심료’ 방인 것이다. 그것도 선문답(禪問答)을 듣고 이념공간을 상상력에 의해서 초월공간으로 귀결시켰다.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금만 향로를 얹은 채 우는 듯한, 웃는 듯한, 찡그린 듯한, 고뇌한 비원이 서린 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보는 사람의 가슴을 꽉 움켜잡는 듯한, 일찍이 본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러한 가부좌상이었다.’

소설은 이러한 등신불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불상 가운데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아로 새긴 부처님이 한 분쯤 있는 것도 무방하리라고 본 것은 아닐까?

인간적 고뇌와 비원을 종교적 구원에서 얻고자 한 등신불의 출현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꼭 필요한 부처님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 원래는 부처님이 아니야.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됐어. 본래는 이 절 스님인데 성불(成佛)을 했으니까 부처님이라고 부른 게지. 자네도 마찬가지야.’

어릴 적 사랑도 받았고 미움도 받았던 만적선사는 소신공양으로 ‘등신불’이 되었다.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리고 해탈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의하여 초점을 맞추어 말한다. 되는 것은 일등이고 성공이다. 안 되는 것은 실패이고 꼴찌이다. 이등은 싫어한다.

어쩌면 ‘등신불’은 해탈한 완전한 부처가 아니라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안고 있는 둘째 부처인지도 모른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은 세상을 살면서 제이인자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펼친 사람이다. 안영은 제이인자로 ‘세 명의 임금을 섬겼으되, 세 가지 마음이 아닌 한마음으로 섬긴 사람’이다.

공자가 제나라에 갔다. 경공을 만났지만 재상인 안영은 만나지 않았다. 제자 자공이 그 이유를 물었다. 공자는 “안영은 세 임금을 섬기면서도 순탄하였다. 안영의 인물됨이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안영은 ‘불참우영’을 말한다. ‘그림자에게조차 부끄러워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제나라의 보통 백성이다. 듣기로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게 되고, 사랑을 주지 않으면 미움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비방과 칭찬은 같은 뿌리에서 생기며, 소리와 메아리는 서로 대답하게 되어 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세 임금을 섬기는 사람은 순탄할 수 있다. 그러나 세 마음으로 한 임금을 섬기는 사람은 순탄할 수가 없다.

‘훌륭한 사람은 홀로 있을 때도, 그림자에게조차 부끄러워 할 일은 하지 않는다. 홀로 잠잘 때는 혼에게조차 부끄러워할 일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물가에 사는 사람은 도끼의 쓰임새를 알지 못하고, 산속에 사는 사람은 그물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공자의 도가 의심스럽구나!”하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자는 잘못을 뉘우치고 안영을 스승으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를 만났다고 한다.

그날 다솔사 ‘죽로지실(竹爐之室)’의 추사체 글씨를 바라보며. 차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초겨울 해바라기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그림자에게조차 부끄러워 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인생은 한결 따듯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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