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김탁구와 촛불시위
<대구논단>김탁구와 촛불시위
  • 승인 2010.09.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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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대구대학교 정치철학 교수

“와~아! 맛있겠다.” 아들 녀석의 입에서 터져 나온 감탄사에 텔레비전 화면을 보았다. 클로즈업된 음식은 먹음직스러움을 넘어 그 모양과 색상의 조화가 눈길을 확 뺏어갔다. 요리가 아닌 예술이었다. 무더위에 지친 식욕으로 얼추 저녁때를 넘긴 시간, 입안은 군침이 흥건했다.

잠시 후 도착한 자장면과 짬뽕을 앞에 두고 아들 녀석과 마주 앉자 갑자기 입안이 메말랐다. 힐끗 눈치를 보며 “괜히 TV는 틀어가지고 …”라고 말끝을 흐리자, 녀석이 씩 웃으며 선수를 쳤다. “아빠, `북한의 어린이는 말이야 …’하고 또 나와야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요즘 웬 음식 프로그램이 이리도 많은지, 식사하며 함께 꼽아본 드라마만도 다섯 손가락이 모자랐다. 인기절정을 누리는 `제빵 왕 김탁구’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파스타’와 `신데렐라 언니,’ 거슬러 올라가면 `커피프린스,’ `김삼순,’ `식객,’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줄줄 이어진다.

그 뿐인가? 식신원정대, 맛대맛, 위대한 밥상, VJ특공대 등 채널마다 널린 게 먹거리 관련 프로그램이란 느낌이다. 이런 추세에 옛날엔 듣지 못했던 세프, 바리스타, 파티쉐, 브루마스터, 소믈리에 등과 같은 말들이 친숙한 일상어로 자리를 틀어간다.

이렇게 먹거리 문화를 뜨게 하는 것은 식생활 패턴에 몰아 닫친 변화의 물결이다. 통계청은 2004년 2·4분기에 도시근로자 가구의 외식비가 전체 식비의 절반을 넘어 51.6%라고 기록했다. 우리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후 경기침체로 주춤하고 있지만, 호시탐탐 절반선을 넘보고 있는 실정이다.

외식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맛집 순례자’가 생겨나고, 이 맛 저 맛 따지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커져 갔다. 옛날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비결에서 생활의 지혜를 찾았지만, 요즘은 그런 음식을 어디서 사먹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생활의 지혜라고 한다.

왜 이렇게 외식이 증가했을까? 첫째, 소득의 증가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텐데, 여유가 있으니 식당을 찾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2천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오른 지난 25년 사이 모든 가계지출도 자연스레 증가했지만, 특히 외식비의 비중은 2.6%(83년)에서 12%를 넘나들게 되면서 가장 빨리 증가했다고 한다.

둘째, 유독 외식비가 급증한 원인으로 맞벌이 가구의 증가를 지적할 수 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졸 남편이 혼자 일해서 중산층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부가 함께 벌어야 중산층에 끼일 수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은 가계소득을 높임과 동시에 살림하는 시간을 앗아가고, 따라서 그 증가된 소득으로 외식을 잦게 하는 요인이 된다.

소득증가와 맞벌이라는 변화의 물결은 식생활 패턴의 물줄기를 바꿔놓고 외식문화를 띄우는 한편 가정과 사회·정치를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다. 먼저 가정을 들여다보면, 가족이 함께 밥 먹는 기회가 대폭 줄었다. 원래 가족은 무엇보다 먼저 `식구’였다. `한솥밥’으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존재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딴 솥밥’을 먹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사회적 파장도 크다. 엄마가 손수 마련한 음식과는 달리 외식은 불안감을 일으킨다. 식당 음식은 사랑과 정성의 결정체가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한 수단이기에 무슨 재료로 어떻게 만드는지가 항상 걱정스럽다. 외식문화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심리는 강한 인화성을 가지고 있어 웬만한 사건의 불똥에도 쉽게 폭발한다. 쓰레기만두 파동이나 소고기시장 개방에 따른 촛불시위는 전형적인 예들이다.

외식문화의 한편에선 스타세프의 화려한 요리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다른 한편에선 불안과 식구의 해체 그리고 사회·정치적 소요로 이어지는 걱정거리가 자리 잡는다. 김탁구의 시청률과 촛불시위 참여는 한 나무의 다른 가지다. 찬사, 유혹, 불안, 걱정, 격분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

먹거리는 이제 가정살림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 벌써 나라살림의 문제가 되어 있으며, 그에 걸맞은 국가적 정책이 요구되는 시대다. 사회적 파란이 일어날 때마다 보건복지부, 농림부, 산업자원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허둥대는 모습을 씁쓸히 보면 나라살림의 솜씨가 아쉽기만 하다. 먹거리에 걱정거리를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는 정부는 우리의 골칫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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