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민주화운동과 올바른 선택
2·28민주화운동과 올바른 선택
  • 승인 2022.02.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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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재
김익재 대구지방보훈청 복지과 주무관
1960년 2월 28일 조병옥 박사의 뒤를 이을 야당 후보 장면 박사의 대구 선거연설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자유당 정권은 공휴일임에도 등교령을 내렸다. 이에 대구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부의 부당한 처사에 항거해 독재타도를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왔다.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 ‘2·28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었다.

2일 28일 정오 무렵. 경북고, 대구고, 경북대사대부고 학생들 중심으로 최초 결성된 시위대 앞에서 결의문이 낭독되었다. 그 유명한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로 시작하는 결의문이다. 지금 읽어도 피가 뜨거워지는 결의문은 시위대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그 기세로 그들은 나아갔다. 현 대구의 중심가인 반월당, 중앙로, 경상감영공원 부근을 지날 때 타 고교 학생들도 합류해 규모는 더욱 커져 8개 고교 1천200명이 참여하는 시위대가 되었다. 그래서 중앙로 인근에 이를 기념한 ‘2·28기념중앙공원’이 있는 것이다.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시위를 이어간 그들의 용감한 모습은 전국에 보도되었으며, 이는 뒤에 있을 3·15 부정선거에 폭발한 민심이 의거를 일으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고, 우리민족의 위대한 의거 4·19 혁명까지 이어질 원동력이 되었다.

2·28민주화운동의 주역인 고교생들은 왜 학생신분임에도 서슬 퍼런 자유당 정권에 맞서려 했을까. 그것이 옳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해야한다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리다고 생각하지 못하는게 아니고, 물리력이 약하다고 저항할 수 없는게 아니다. 그렇게 실천할 용기가 부족해서 못하는 척할 뿐이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그것을 실천할 용기를 갖춘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우리 사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세상의 부조리와 직면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보통 둘 중 하나다. 사회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굴복하느냐 저항하느냐. 굴복은 쉬운 선택이고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항은 어려우며 뜻을 이루기 위해 희생해야할 대가도 따른다. 선택이 어렵다면 2·28민주화운동 선배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민주화운동을 선택한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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