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설핏해질 무렵
눈 푹푹 쌓인 비포장길 한참을 더 가서야
길섶에 차를 세웠다
산과 들과 길이 경계도 없이 모두 한통속인데
하얀 평화가 지천에 널려있다
흰 눈에 짓눌린 헌 슬레이트 지붕은
납작 엎드린 홀로 노인같다
키우던 소 12마리
집 근처 산에 매몰시킬 때
출산을 하면서 질질 끌려간 소의 혼령이
밤마다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고 울었단다
읍내 가서 막걸리 두 병 사고 조촐히 음식차려
큰 절 두 번 하고나니
그제야 잠을 이룰수 있었다고
가난한 농사꾼 따라다니며 일만 하더니
살아갈수록 소가 된 순덕이
죽은 생명들의 외침
경산 코발트 광산 수직 동굴 속 양민집단학살 귀신
구제역 생매장 절규하던 소귀신
지옥으로 사라진
생을 놓지 못하는 음성이 솟구친다
“살려 주이소”
◇이필호= 1959년 경북 군위 출생. 2010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삶과 문학 회원, 대구 작가회의 회원, 2017년 시집 <눈 속의 어린 눈>
<해설>김인강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의 소중함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 될 수 없다. 구제역으로 인해 가족처럼 소중히 여겼던 가축들을 매몰 시켜야 하는 상황에 제 정신으로 밤을 지새울 수 있었을까?
묵묵히 소처럼 일하며 그들과 동고동락하던 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경산 코발트 광산 양민집단 학살 사건처럼 구제역으로 인한 소들의 매몰 상황도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생명은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