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삶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들어 올리는 몽돌
[화요칼럼] 삶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들어 올리는 몽돌
  • 승인 2022.10.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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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문학박사·시인
나무도 바히 돌도 없는 뫼에

매에게 좃긴 까도리의 안과

大川 바다 한 가운데 一千石 실은 배에

櫓도 일고 닷도 끊고 용총도 걷고

키도 빠지고 바람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섯겨 갈길은 千萬里 남고

-작자미상, 남창가곡 반우반계「編樂」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가 있다. 삶의 소용돌이, 그 극한상황을 읊은 사설시조가 있다. 지은이가 누구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재에 등재된 한국의 정가(正歌) 가운데 남창가곡 반우반계(半羽半界) 편락(編樂) ‘나무도 바히’다. ‘나무도 바위 돌도 없는 산에 매서운 매에게 쫓기고 있는 까투리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석이나 되는 짐을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기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거기다 거센 바람까지 불어 물결은 치고, 안개마저 뒤섞여 잦아지는데 아직도 갈 길은 천만리나 남았고, 사면(四面)은 검어 어둡고 저무는데 천지는 적막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수적(水賊)을 만난 이 도사공(都沙工)의 마음과 엊그제 님 여읜 내 마음이야 어디에 가흘’할 수 있겠느냐고 노래한다.

‘나무도 바히’의 시인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소용돌이를 만나게 된다. 그제 수성구 ‘울룰루 문화광장’에서 문향을 피워올리는 공연이 있었다. 수성구 문인협회(회장 이병욱) 연간 집 『수성문학』 3호 출판기념회는 시민과 함께하는 시음악 축제였다.

시음악 축제에서 나의 역할은 서막을 여는 오프닝 축시인 이상화 시인의「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시낭송과 『수성문학』 3호를 열어주는 권두시, 이승열 시인의 작품 「하늘 위의 바다」낭송이었다. 그런데 출연을 앞두고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무대의상이 보이지 않았다. 식은 진행이 되었고, 사회자는 이름을 호명하고, 지체할 시간은 없고, 시음악은 대금에서 피아노로 뒤틀려 연주되고, 음향팀에게 싸인은 닿지 않고, 청중의 시선은 무대 중앙으로 꽂히고, 참으로 나약해진 나는 모든 걸 접고 시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처럼 ‘빼앗긴 들’에서도 봄을 찾는 마음으로 번뇌를 추스르며 다음 무대를 기다리는데 황인동 시인께서 전자오르간 버튼을 올리며 핀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말없는 응원에 힘입어 두 번째 연주인 이승열의 시「하늘과 바다」는 ‘재즈 시낭송’으로 열어갈 수 있었다. 어떤 언급도, 연습도 없었지만 황인동 시인의 손가락은 시를 연주하듯 감성적이며 조용하게 녹턴(nocturne)을 빚어 올리고 있었다. 왼손이 짚어가는 야상곡(夜想曲) 화음에 따라 이승열의 시는 “초심은 세월에 씻기어 낡아지고/ 연륜은 해묵은 이끼처럼 쌓여도/ 하늘 위의 바다/ 그곳에/ 두 번째 삶을 열”기 위해 오른손의 연주를 따라서 넘어가고 있었다.

내면 속에 숨어있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매몰된 듯 공연 후 나는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 급속한 탈진상태로 빠져들 수 있었지만 외려 깨어나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무거운 바위를 들어올리는 ‘지렛대’에서 세상을 재발견하였다. ‘받침대와 지렛대’를 주면 지구도 움직일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생에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받침대’처럼, ‘지렛대’처럼 서로 받쳐주고 괴어 주는 힘이 필요하다. ‘수성문학’과 ‘수성문인’이 건네는 ‘잘했다’ ‘고맙다’는 짧은 인사에서 작은 지구를 들어 올리는 ‘몽돌’ 하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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