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
[화요칼럼]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
  • 승인 2022.12.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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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문학박사·시인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입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입니다.

-안나 엘리너 루즈벨트의 연설문 중

"미래는 자신이 가진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자의 것이다." 미국의 유일한 4선 대통령인 루즈벨트의 부인 엘리너(Anna Eleanor Roosevelt) 여사의 연설문 가운데 한 문장이다. 내일이라는 미래는 만나 본 적 없지만 자신이 가진 꿈의 실현 가능성을 믿고, 오늘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인생이란 선물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뜬구름같은 말로 들릴 법도 한데 새삼 고개 끄덕여진다.

최근 유엔은 평생연령의 기준을 재정립하였다. 미성년기는 0세~17세, 청년기는 18세~65세, 중년기는 66세~79세, 노년기는 80~99세,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으로 규정한다. 눈여겨 살펴보면 청년기가 많이 길어졌다. 학자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유엔은 청년기를 18~65세로, 예전의 70세 노인은 신중년으로 변했다. 청년기와 중년기, 노년기가 모두 길어졌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졌으며, 무엇이든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이다. 경영에 따라서 매력 인생, 또는 인생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얼마 전 천아트 체험 과정에 참여했다. 소수의 인원 제한으로 치열한 투혼이 필요했다. 첫째 날, 참여자들의 모습은 놀라웠다. 100세 시대, 평생교육시대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청년, 중년, 노년 등의 연령층과 다양한 문화계층이 함께하는 현장이었다. 지도교수는 첫째 시간에 10회기 동안의 학습 내용과 주의사항을 설명했다. 각 회기마다 백색의 천에 페브릭 물감으로 야생화를 그리는 체험이다. 흰천의 여백 보존을 위해서는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할 것, 물통은 오른손 옆에 둘 것, 물감은 휘발성이 강해 쓸 만큼만 덜어내고 뚜껑은 꼭 닫아둘 것, 붓은 그림을 그린 후 물감 묻은 채로 두지 않을 것, 붓을 씻을 때는 물이 천으로 튀지 않도록 주의할 것 등. 말씀에 따라 눈마중한 천, 물감, 붓, 물통은 예전에 그냥 보아왔던 물건이 아니라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도구들임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론과 실천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하고, 다양한 계층이 함께하는 곳에는 언제나 변수의 가능성이 공존한다. 귀로 전해 들은 말은 새겨두지 않으면 휘발성 강한 물감처럼 날아가 버리거나 굳어버려 제대로의 역할을 못 하기도 한다. 천아트 현장도 그랬다. 성질이 다른 천, 물감, 붓, 물, 손, 소재 등과의 조율은 마음이 이끄는 데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거기다, 누군가 붓을 생각 없이 씻으면 예상치 못한 파편으로 주변에까지 얼룩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렇게 아슬아슬 건너서 온 마지막 회기는 그동안 배운 것 중 가장 자신 있는 소재로 소품 만들기였다. 백색의 천을 앞에 둔 참여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쉽게 작업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도록 고심하는 사람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 갑자기 여기저기서 앗! 어메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시뻘건 물감이 사방으로 튀어 여기저기 흰 천마다 피범벅의 발생이다. 모두 놀라서 얼음으로 굳어있는데 한 사람이 급하게 일어섰다. 얼굴과 목을 타고 벌건 물감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조용히 앉아 다시 그림을 그렸다. 얼굴은 말끔히 닦였지만 청색 자켓은 붉은 고춧가루를 뿌려둔 듯 흉측했다. 물감통을 마구 흔들어 짜면서 사방으로 난사한 주인공의 눈에도 그 모습은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니어서 얼룩을 닦아주려 했지만, 옷에 묻은 물감은 공기와 접촉되는 순간 굳어버려 닦아낼 수도 지울 수도 없었다.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소리 너머 작고 나즈막한 소리가 이어졌다. "선생님!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둘째 시간인가? 선생님이 붓 씻으며 물감 튀길 때, 왜 저러실까 했는데... 오늘에야 깨달았어요. 어쩌면 내가 전생에 선생님을 참 많이도 속상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빚 다 갚았으니 다음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가슴이 짠해졌다. 인생의 한순간도 한 편의 예술작품임을 알았다.

사람의 매력은 나이 들수록 하무뭇해지는 것 아닐까. 매력은 외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활력을 넘어 대상을 편안하게 하는 언어, 넓은 사고력과 아량 깊은 배려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하는 예술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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