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다시, 행복하게 도전하고 아름답게 패배하는 꿈을 꾸자
[화요칼럼] 다시, 행복하게 도전하고 아름답게 패배하는 꿈을 꾸자
  • 승인 2023.01.0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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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문학박사·시인

온 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니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서 겨울 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서 겨울 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은 맘껏 펼쳐 보리라


 

-정인보 시 『새해의 노래』전문



새 달력을 벽에 걸어놓고, 새 수첩을 펼쳐 첫 장에 좌우명 새기듯 시 한 편 옮겨 적는다. 위당 정인보(鄭寅普, 1893~1950)의 시, 「새해의 노래」다. 이 시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해방 직후 대한민국정부수립을 계기로 하여 쓰여졌다. 새해가 밝아 오고 설날 새 아침이 찬란한 것은 온 겨레의 정성으로 해를 빚어 올렸기 때문이라고 시적화자는 노래한다. 비록 나라와 민족이 혼란에 처한 상황일지라도 새로운 각오로 한없는 우리의 할 일을 찾아서 새해에는 맘껏 펼쳐 보라고 할 수 있다고 어깨를 다독여준다.

시 「새해의 노래」를 쓴 위당 선생은 한문학의 대가로 알려져있지만 서지학, 국사학, 국문학 등 다방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우리나라 역사 연구의 근본을 ‘단군조’ 이래 5천 년을 견뎌온 ‘얼의 역사’임을 강조하였고, ‘국학’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으며, 그 연구의 기초를 ‘실학’에서 찾았다. 해방 후, 왜곡된 민족사를 국민에게 바르게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조선사연구』(1946)를, 지행일치의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1972)을 펴냈다.

8·15해방 후 우익 진영의 문인단체인 조선문필가협회 초대회장, 국학대학 학장, 초대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어 사망했다. 위당 선생은 백 년을 훌쩍 뛰어넘어,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세기의 인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6개월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초스피드 사회, 세상이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르는 초환란의 시대, 초고령화 사회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삶이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최근 미국 US뉴스앤월드리포트(USNWR)가 ‘2022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순위를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세계 85개국을 대상으로 1만7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군사력, 경제력, 외교력 등을 합산해 평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조사에서 지난해 한국이 6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결과를 발표한 USNWR은 한국의 첨단 서비스 기반 경제에 주목하면서 “국민총저축(GNS)과 외국인 투자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 가운데 “한국 문화는 유교의 인본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 이밖에 USNWR은 한국인의 선호, 인구 고령화 문제, 건강보험 및 의무 교육 등에 대한 언급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방점은 정신문화를 통해 미래의 긍정을 읽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표현 속에는 ‘지속가능성의 국민’이 존재한다. 이러한 인물을 예전에는 지나간 영상이나 묵은 독서를 통해서 만났다면 최근 들어서는 현재진행형의 선배들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오늘도 행복하게 도전하고, 젊음과의 경쟁에서 아름답게 패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즐거운 도전을 꿈꾸는 동시대의 사람들의 이름을 되뇌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큰 기쁨이기도 하다.

팔순의 계단을 오르고 있지만 육필시 한편 멋지게 써 보겠다는 작정으로 켈리그라피 붓끝을 다독이는 원용수 시인(81세), 예술가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에 검지를 올리는 방종현 수필가(78세), 정년퇴임 후 폭넓은 음악활동으로 경조사 봉사활동을 펼치는 황인동 시인(78세), 야생화 포기를 천아트에 옮겨 가슴으로 피워올리는 허수현 한국화가(78세), 잊혀진 삶의 조각을 찾아 픽션작가에 도전하는 성영희 시인(72세), 밥 먹듯 호흡 조절하며 프로 앙상블 오디션에 도전하는 함청자 음악인(82세), 색실로 바느질하듯 틈틈이 시·동시·수필을 쓰는 곽명옥 한복명장(73세), 전쟁을 피해 흥남부두에서 대구로 이주한 궤적을 언어로 줍고 있는 강경자 시인(83세) 등 호명할 수 있는 인물들이 차고 넘친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진 일반적인 생의 연륜은 극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발자취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였는가에 따라서 그 크기와 모양, 빛깔은 각양각색이다. 촌각을 아끼며 늘 행복하게 도전하고, 아름답게 패배하면서, 즐겁게 다시 꿈꾸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세계는 한국에 주목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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