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김흥수 화문집 출간이 화젯거리
[대구논단] 김흥수 화문집 출간이 화젯거리
  • 승인 2023.01.30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김흥수라는 이름을 누드화의 대가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43세 연하의 제자와 세 번째 결혼한 사람으로도 기억하고 있을 듯싶다. 어떻게 기억하던 간에 그는 96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고 아흔여섯까지 100살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떴다. 젊은 부인이 먼저 가지 않았다면 천수를 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모국에서보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은 화가다. 그가 부산 피난시절 광복동 골목 다방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던 권옥연 박고석 황염수 이상욱 등 나중에 한국화단의 대가로 성장한 화우들과 함께 커피 한잔 나누며 세계의 그림 성향을 얘기하다가 추상화가 새로이 유행하고 있다는 미국 타임지의 소식을 나누게 되었다. 그 때 여러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도 추상화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하는 말이 나왔다. 이 때 김흥수와 박고석이 반대 의견을 냈다. “남의 뒷 꽁무니만 따라 다녀선 안 된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을 준비해야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김흥수 미술의 핵심인 하모니즘이 20여년 후에 세계를 휩쓸게 된다.

그것이 1973년 추상화를 완성시키는 조형주의 처녀작 ‘꿈’의 탄생이다. 그는 전쟁 중 종군화가로 군 복무를 하면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혈통을 같이하는 형제들이면서도 열강의 역학관계의 제물이 되어 고귀한 인간관계, 가족애, 동포애가 이데올로기라는 허울 좋은 탈을 쓴 테러리즘에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김흥수는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 함흥에서 태어났다. 함흥고보를 다녔으며 미술에 남다른 재주를 가진 그가 동경미술학교를 지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경력을 살피면 설흔살 나이에 동화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파리에 건너가 파리 국제미술전에도 출품하며 리라뱅시 화랑에서 개인전도 연다. 미국에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미술교육부 강사로 일했으며 조국이 광복을 이룬 후에는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한다. 한국일보에서 주최하는 한국미술대상전에 ‘불사조’를 출품하여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가 제창한 하모니즘은 구상과 추상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표현형식만으로도 독자적인 형식에 도달한 세계적 작가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미술계의 공로로 전두환과 김대중 시절에 옥관문화훈장과 금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 인간의 삶에 향기를 넣어주고 불안을 떨쳐내는 위안을 주는 것이 예술의 세계라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마음의 표현은 음악이나 시에서는 가능하다. 그것을 김흥수는 그림에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는 하모니즘으로 내세운다. “나는 나의 그림을 하나의 고정된 형식으로 묶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과 내일의 달라질 그날을 위해 나의 그림을 자유 속에 놓고 싶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든지 나만의 오리지널한 것이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1967년 파리의 첫 개인전 서문에서 확고한 자신(自信)으로 전 세계의 미술인들에게 소리 높여 절규한 것이다.

김흥수는 해외에서 인정받은 화가가 별로 없던 시절에 세계미술사상 선구자적인 역할로 주목받았다. 그는 평생 누드를 즐겨 그렸다. 그를 가리켜 한국의 피카소라고 부른다. 누드는 에로티시즘을 뛰어 넘는 예술성으로 인정받는다. 말년에 43세 연하의 제자와 결혼했을 때 세상은 그에 대해서 약간의 질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흔연했다. 짓궂은 이들이 남녀 간의 문제를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오히려 즐겁게 살았다. 부부의 삶보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보는 견해가 컸다.

그는 언제나 “나는 자유다” 외적자유가 아닌 내적인 자유는 창작에 대한 실험과 연구였다. 그는 1944년 동경미술대 졸업직전에 “조선인이 일본전쟁에 목숨을 바칠 수 없다”고 학병을 거부하여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1989년 45년만에 주일대사관에서 1인졸업식으로 졸업했다. 이번에 해맞이미디어를 통하여 김흥수화문집이 나오자 시중의 화제꺼리로 등장했다. 그의 내면에 깃든 예술의 향기가 글과 그림을 통하여 많은 이들을 다시 일깨워준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