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다음 소희’, 세상을 향한 뜨거운 외침
[화요칼럼] ‘다음 소희’, 세상을 향한 뜨거운 외침
  • 승인 2023.02.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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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절망하지 말라,/ 네가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절망하지 말라// 이미 모든 게 끝나버린 것처럼 보여도,/ 새로운 힘은 다시 밀려온다.// 그것은 당신이 살아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것이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모든 게 끝나버린 것이다./ 정말로.

-카프카, ‘카프카의 일기’ 중

한국 영화 최초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며 7분간의 기립박수를 끌어낸 ‘다음 소희’는 그 밖에도 아미앵국제영화제, 판타지아영화제, 도쿄필맥스영화제, 핑야오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로부터 끊임없는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핑야오국제영화제에서는 “‘다음 소희’는 한 사건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다양한 측면을 파고들어 계량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겪는 곤경을 평범한 악으로 그려낸다. 이 영화는 뛰어난 동시대성으로 우리 모두에게 울림을 준다. 또한, 세련된 서사와 절제된 영화 언어, 침착함은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2%를 기록하며 작품성은 물론, 성별과 국가, 연령대를 초월하는 뜨거운 공감을 이끄는 작품으로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영화 ‘다음 소희’는 당찬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김시은 분)가 현장실습에 나가면서 겪게 되는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형사 유진(배두나 분)이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다. 전반부에서 소희는 전공인 ‘애완동물 관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직무지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현장실습생 추천을 받는다. 대기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며 친구에게 ”나 이제 사무직 여성이야“라고 자랑까지 한다. 이렇게 소희는 부푼 기대를 안고 콜 센터에서 현장실습 업무를 시작한다. 애써 미소지으며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인사를 건네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트집과 폭언, 성희롱 등 극한의 감정노동은 여고생에겐 힘든 벽이다. 소희에게 맡겨진 일은 성인상담사도 업무 강도가 높아 손사래치는 계약해지방어였다. 거기다 오직 실적에만 목숨 거는 회사,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계약서에 적힌 약속과는 턱없이 차이가 나는 월급 명세서 등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소희는 점차 미소를 잃어간다. 나의 행복보다는 부모님의 평안, 학교의 취업 성적, 콜센터 팀 성적, 회사 실적 등에 억눌려 주체할 수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결국 차가운 겨울날 슬리퍼 한 짝조차 잃은 채 허청인다.

어느 날 소희는 저수지 꽁꽁 언 얼음 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형사 유진이 영화 후반부를 연다. 유진은 주검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며 천천히 소희의 발자취를 짚어간다. 유진은 딸의 주검을 무조건 부검하겠다는 소희 아빠를 따라 수사하다가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는 사람들에게서 경악하고 몸서리친다.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던 유진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어린 소희의 꿈을 외면하는,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 분노한다. 본질적인 목적보다는 정량실적에 의한, 정량실적을 위한 것들 앞에서 산화된, 산화되는 목숨들이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아 절망한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 비극은 형체만 달라질 뿐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그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에 무너진다.이렇게 ‘다음 소희’는 여고생 소희와 형사 유진의 시선으로 분절되면서도 서로 마주본다. ‘다음 소희’에서 소희와 유진의 시선이 교차하는 곳에는 햇살이 반짝인다. 소희가 슬리퍼 끌 듯 짧은 삶을 힘겹게 끌고 이른 저수지 아래 카페의 문틈으로는 저녁 금빛 햇살이 반짝이고, 시간이 흘러 소희의 진실을 좇기에는 자신이 참으로 무기력함을 발견한 유진의 앞에도 똑같은 햇살이 와서 반짝인다. 불의한 상황에는 감정 표현을 참지 않는 모습, 춤추기를 좋아해 넘어지고 넘어져도 일어서 춤추는 모습 등은 살아생전 소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보여주는 파편화된 영상들이다.

영화 ‘다음 소희’는 전주의 한 특성화 고등학교 여학생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화가 만들어지는 기간에도 여수에서 정박한 실습선에 붙은 따개비를 따던, 폭설 중에 야근을 하던, 일주일에 70시간이 넘은 도장 작업을 하던 아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다음 소희’는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절망과 싸우고, 버팅기고, 쓰러지는 어제의 소희, 오늘의 소희, 내일의 소희를 만나게 한다. 그 사각지대가 현장실습장 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위험에도 항거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아이들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다음 소희’는 점점 웃음과 말을 잃어가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음을 영화의 언어에서는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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