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위대한 승리의 첫걸음 ‘2·28민주운동’
[기고] 위대한 승리의 첫걸음 ‘2·28민주운동’
  • 승인 2023.02.2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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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재 대구지방보훈청 주무관
모욕적인 현실을 마주하는 것은 힘든 법이다. 그 현실의 뒤편에 강한 힘이 존재할수록 그 심적고통은 강해진다. 찬바람 같은 고통을 이겨내고 지켜낸 불꽃들이 모여 타오르는 달집이 되어 어둠을 지워갈 때 위대한 역사가 만들어진다. 자유당 독재에 항거한 ‘2·28 민주운동’은 첫번째 달집이다.

강자는 약자를 억누르려 하지 않고, 약자를 무시하지 않으며,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강자로서 모든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우리는 그 강함을 권위라고 한다. 1960년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권위를 스스로 내던졌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임에도 대구의 고등학교에선 등교지시가 내려졌다. 유력한 야당 부통령 후보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였다. 이 모욕적인 현실을 규탄하고자 대구 8개 고등학교 800여명이 반월당에 모였고, 이들의 시위행진에 더 많은 고등학생들이 합류하여 최종 1천2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다. 이 소식을 접한 경찰은 그들을 강제해산시키려 했다. 권력이 약자를 힘으로 제압해 입을 막으려는 추악한 모습을 지켜보던 대구시민들이 학생 보호를 위해 경찰들을 저지했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부여받은 경찰이 시민을 탄압하고 이에 시민들이 항거한 순간 정부의 권위는 사라지고 야만적인 폭력만 남는다.

불과 7년 전에 끝난 6·25전쟁에서 한국정부는 무엇을 지키고자 싸웠고, 무엇을 배웠으며, 왜 그 전쟁을 잊지말자 했던가. 2·28민주운동 참여자 강제해산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언론의 자유는 없었으며, 주권도 국민에게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래서야 전쟁에서 맞서 싸운 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도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용감한 대구시민들을 본 기자들이 그동안 정부에 억눌려있던 기자정신을 되찾은 건 다행이었다. 2·28민주운동 소식은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국민들의 가슴속에 민주화 불꽃을 틔웠으며 이는 2달 뒤 위대한 4·19혁명에서 거대한 횃불로 타오르게 된다.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통제할 수도 억누를 수도 없다. 일순간 상식을 넘는 폭력에 억눌려있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영원할 순 없다. 거대한 둑이 작은 틈에서 균열이 번져 터지듯 억눌린 민주시민의 정신은 억누르는 자의 빈틈을 반드시 찾아내고 압제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것을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대구의 2·28민주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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