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메이트' 미완의 시절, 서로가 있어 반짝였나봐
영화 '소울메이트' 미완의 시절, 서로가 있어 반짝였나봐
  • 김민주
  • 승인 2023.03.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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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미소, 조용한 하은 사이
진우 등장하면서 우정에 균열
미소 다시 서울가며 편지로 소통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져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둘
오해·상처 반복한 인연만 14년
현재·과거 오가며 각자 삶 제시
영화소울메이트1
영화 ‘소울메이트’ 스틸컷. NEW 제공

‘가장 빛나던 그 때, 우리는 함께있다’

청춘은 항해하는 배와 같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점차 세상을 알아가던 그 시절, 그 소중한 순간을 공유했던 사람. 추억 한 페이지 속 미완의 나를 완성시켜준 누군가를 아련하게 떠올리게 되는 영화 ‘소울메이트’이다.

엄마를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꼬마 미소(김다미)는 제주도까지 오게 된다. 전학 첫날부터 미소는 학교에서 도망을 치고, 짝꿍이 된 하은(전소니)은 미소의 가방을 들고 뒤쫓아간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미소와 하은은 자라온 환경부터 성향까지 다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미소는 엄마를 서울로 보내고 혼자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르토 생활비를 벌며 성장했고 하은은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두 사람 모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미소는 추상화를, 하은은 극사실주의 연필화를 그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캔버스를 채웠다.

동적인 미소와 정적인 하은, 완전히 다르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던 두 사람의 관계는 진우(변우석)의 등장으로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서클 미팅에서 하은과 진우가 커플이 된 후, 이젠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청춘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진우는 자유로운 미소가 엉뚱하다고 느끼면서도 은근히 끌린다. 이 마음을 눈치챈 미소는 제주도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하은도 미소와 진우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를 느끼고, 서울로 떠나는 미소의 목에 걸린 진우의 목걸이를 발견하면서 오해는 점차 깊어진다.

서울로 떠난 미소와 제주도에 남은 하은, 두 사람의 소통 방법은 오직 편지다. 미소는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만 하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은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내려놓고 가족들이 원하는 선생님이 될 준비를 한다. 물리적으로 떨어진 만큼, 두 친구의 마음에도 거리가 생기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영화 ‘소울메이트’는 안니 바오베이 작가의 소설 ‘칠월과 안생’을 각색한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리메이크작으로, 한국 감성을 덧입혀 완성됐다. 작품은 두 주인공이 어른이 된 현재와 소녀였던 과거를 한 챕터씩 플래시백 방식으로 보여준다. 플래시백의 도구는 하은의 블로그 일기다. 그날의 기억과 감정을 담은 하은의 일기를 미소가 하나씩 클릭하면서 찬란하게 빛났던 청춘의 순간을 하나씩 소환한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반짝이는 청춘을 담은 과거, 서울을 배경으로 다소 팍팍한 인상이 드러나는 현재는 관객들에게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러닝타임이 지나갈수록 더욱 극명해지는 이 대비는 두 주인공 사이의 거리감을 물리적으로 느끼게 한다.

오해와 이별, 만남과 상처를 반복하면서도 길게 늘어져 끊어지지 않은 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삶은 겉으로는 잔잔해도 내면은 휘몰아치는 제주 바다의 파도를 닮았다.

열세 살에 처음 만나 스물일곱이 되기까지, 태어난 환경부터 타고난 기질까지 모든 게 다른 두 소녀가 서로 닮아가는 14년의 세월은 우정이나 사랑으로 정의하기에 깊고 복잡하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결코 자유롭게 살 수 없었던 하은과 겉으론 자유로워 보였지만, 평안한 삶을 그리워했던 미소. 둘은 달랐기에 위태로웠지만, 자신이 가지지 못한 서로를 갈망했다. 둘은 둘이었지만, 한 몸 같았다.

음지에서 자란 미소의 그림에는 다채로움이 있었고, 양지에서 자란 하은의 그림은 연필이 품고 있는 흑연의 어두운 색채로 가득했던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그리며 차이를 동경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미소와 하은은 각자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 함께 놓고 보니 하나의 그림이 담겨 있었다.

두 소녀는 치열하게 갈등하고 성숙해지며 한 뼘 더 성장한다. 이때 배우 김다미와 전소니의 연기 호흡은 빛을 발한다. 유독 클로즈업 샷이 자주 등장하는 작품에서 두 배우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맑았던 10대부터 세월이 지나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대하는 복잡한 시선을 영화에 투명하게 표현하며 안정적인 합을 보여줬다.

영화 ‘소울메이트’의 특별한 힘은 관객들이 각자의 소울메이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미소와 하은이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감정을 크게 흔드는 소중한 어떤 이를 그려보게 한다.

미소처럼 추상화로 그릴 수도 있고, 하은처럼 극사실주의 연필화로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의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이 내 마음이 보인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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