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따라 유난히 꽃이 예쁘다.
옮긴 직장 앞에 시장이 있고, 시장을 들어서면 볕좋은 오르막에 리어카위에 소복히 꽃이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화사해 반짝거렸다.
와~하는 마음속 탄성을 무시할 수 없어 같이 가는 동료의 팔을 잡아 이끌어 나란히 섰다.
꽃은 멀리서 여러개가 있을 때 더 예쁘다고 늘 생각했지만, 올해는 가까이서 보아도 예뻤다.
분홍, 노랑, 하양, 보라색들이 자기색을 내고 있었다.
수국, 카랑코에, 제라늄,수선화은 자주보아왔던 꽃인데 이름 모르는 꽃들도 많았다.
설란, 안개꽃도 있었고 다른 꽃들도 있었다.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집에 빈 화분들이 애처로웠다. 빈 화분을 바라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오지 않고, 낮에 보았던 꽃들이 떠올랐다.
여러색이 어우러진, 햇살을 받고 빛나고 있던 꿈에 그리던 꽃밭이었다.
TV에서 꽃밭을 멋지게 가꾼 사람들이 소개될 때마다 그 곳에 달려가고 싶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땅, 꽃을 키우고 가꿀 수 있는 시간, 그것에 동의한 배우자.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간혹 집안에서 마당이나 베란다, 거실에 자기만의 작은 꽃밭을 가꾸는 사람을 볼 때는 열망이 더 솟아났다. 남편의 동의만 있으면 될일이었는데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자기의 밭을 가꾸는 데는 열성이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골에 갈 때 마다 조금씩 남편에게 강조했다.
당신의 밭처럼 나에게는 꽃밭이 필요하다. 내가 협조하는 것처럼 나의 작은 꽃밭에 협조해라. 먹는 것 만큼 기분좋은 것도 중요하다. 기분이 좋아야 서로간에 원만하고 하는일도 잘 풀린다. 먹기만 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얼마나 불행하냐.
조금씩 말한 것이 효과가 있어서인지 베란다 통로만 확보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맴맴도는 꽃들의 환영을 우리집으로 가져오기로 햇다.
옮긴 직장에서 커피 사마실일이 없어 돈이 굳어서 커피 대신 꽃 화분하나 사는 것이 사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안개꽃을 사려다 그 옆에 보라색 꽃이 더 눈에 들어왔다.
두 배 비쌌다. 망설였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 값이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다. 큰 맘 먹고 샀다.
캄파눌라였다. 꽃다발만큼이나 커서 기분이 좋았다. 뇌가 행복감으로 출렁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미소가 지어졌다. 꽃만큼 자신이 예뻐진 기분이었다.
혹시 남편이 큰 돈을 들였다고 잔소리를 할까봐, 그리고 두 개의 화분으로 키우려고 반으로 갈라서 심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꽃은 시들고, 줄기가 축 늘어졌다.
마음이 아팠다. 다시 살아나리라 일주일 두고 보기로 했다.
다음주 다시 시장투어를 했다. 작고 하얀 종이꽃과 흰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앵초꽃을 샀다.
과감히 남편의 장독대 위에 두었다. 잘 어울렸다. 남편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보라색 캄파눌라는 처음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
점차 살아나기는 했지만, 보고싶은 것은 ‘지금’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이었다.
‘지금’ 꽃을 보며 행복해질 수 잇는 기분이었다.
분명 내년이면 풍성하게 꽃이 피겠지만 그것을 일년 유예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더 마셔도 된다.
캄파눌라는 다시 사기로 했다. 꽃집 아줌마는 두 번째 산다고 천원 깍아주었다.
보라색 캄파눌라를 방안에 두었다. 방안에 행복의 기운이 뻗쳤다.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잠도 푹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머리가 맑았다.
낮에는 바람이 통하게 베란다에 두었다가 밤에는 방안으로 가져가려니 남편이 보고 “안고 자려고”한다. 그래 기분좋게 안고 잔다.
책장에 작은 위스키 병이 눈에 띄었다. 꽃 한 송이 꽃아두면 어울릴 것 같았다. 싱싱한 한 줄기를 잘라서 사무실에도 꽃아두었다.
한 송이 캄파눌라가 내 눈을 보라색으로 물든인다.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자주 멍하니 꽃만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일도 즐겁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이 꽃멍이다.
옮긴 직장 앞에 시장이 있고, 시장을 들어서면 볕좋은 오르막에 리어카위에 소복히 꽃이 피어있는 모습이 너무 화사해 반짝거렸다.
와~하는 마음속 탄성을 무시할 수 없어 같이 가는 동료의 팔을 잡아 이끌어 나란히 섰다.
꽃은 멀리서 여러개가 있을 때 더 예쁘다고 늘 생각했지만, 올해는 가까이서 보아도 예뻤다.
분홍, 노랑, 하양, 보라색들이 자기색을 내고 있었다.
수국, 카랑코에, 제라늄,수선화은 자주보아왔던 꽃인데 이름 모르는 꽃들도 많았다.
설란, 안개꽃도 있었고 다른 꽃들도 있었다. 구경만 하고 지나쳤다.
집에 빈 화분들이 애처로웠다. 빈 화분을 바라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오지 않고, 낮에 보았던 꽃들이 떠올랐다.
여러색이 어우러진, 햇살을 받고 빛나고 있던 꿈에 그리던 꽃밭이었다.
TV에서 꽃밭을 멋지게 가꾼 사람들이 소개될 때마다 그 곳에 달려가고 싶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땅, 꽃을 키우고 가꿀 수 있는 시간, 그것에 동의한 배우자.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간혹 집안에서 마당이나 베란다, 거실에 자기만의 작은 꽃밭을 가꾸는 사람을 볼 때는 열망이 더 솟아났다. 남편의 동의만 있으면 될일이었는데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자기의 밭을 가꾸는 데는 열성이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골에 갈 때 마다 조금씩 남편에게 강조했다.
당신의 밭처럼 나에게는 꽃밭이 필요하다. 내가 협조하는 것처럼 나의 작은 꽃밭에 협조해라. 먹는 것 만큼 기분좋은 것도 중요하다. 기분이 좋아야 서로간에 원만하고 하는일도 잘 풀린다. 먹기만 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얼마나 불행하냐.
조금씩 말한 것이 효과가 있어서인지 베란다 통로만 확보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맴맴도는 꽃들의 환영을 우리집으로 가져오기로 햇다.
옮긴 직장에서 커피 사마실일이 없어 돈이 굳어서 커피 대신 꽃 화분하나 사는 것이 사치는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안개꽃을 사려다 그 옆에 보라색 꽃이 더 눈에 들어왔다.
두 배 비쌌다. 망설였다. 스타벅스 커피 한잔 값이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다. 큰 맘 먹고 샀다.
캄파눌라였다. 꽃다발만큼이나 커서 기분이 좋았다. 뇌가 행복감으로 출렁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미소가 지어졌다. 꽃만큼 자신이 예뻐진 기분이었다.
혹시 남편이 큰 돈을 들였다고 잔소리를 할까봐, 그리고 두 개의 화분으로 키우려고 반으로 갈라서 심었다.
그랬더니 다음날 꽃은 시들고, 줄기가 축 늘어졌다.
마음이 아팠다. 다시 살아나리라 일주일 두고 보기로 했다.
다음주 다시 시장투어를 했다. 작고 하얀 종이꽃과 흰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앵초꽃을 샀다.
과감히 남편의 장독대 위에 두었다. 잘 어울렸다. 남편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보라색 캄파눌라는 처음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
점차 살아나기는 했지만, 보고싶은 것은 ‘지금’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이었다.
‘지금’ 꽃을 보며 행복해질 수 잇는 기분이었다.
분명 내년이면 풍성하게 꽃이 피겠지만 그것을 일년 유예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더 마셔도 된다.
캄파눌라는 다시 사기로 했다. 꽃집 아줌마는 두 번째 산다고 천원 깍아주었다.
보라색 캄파눌라를 방안에 두었다. 방안에 행복의 기운이 뻗쳤다.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잠도 푹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머리가 맑았다.
낮에는 바람이 통하게 베란다에 두었다가 밤에는 방안으로 가져가려니 남편이 보고 “안고 자려고”한다. 그래 기분좋게 안고 잔다.
책장에 작은 위스키 병이 눈에 띄었다. 꽃 한 송이 꽃아두면 어울릴 것 같았다. 싱싱한 한 줄기를 잘라서 사무실에도 꽃아두었다.
한 송이 캄파눌라가 내 눈을 보라색으로 물든인다. 바라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자주 멍하니 꽃만 바라본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일도 즐겁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이 꽃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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