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어디 두고 온 걸 잊어버린 듯, 오늘은
내가 나를 두고 간다
한 밤중에 일어나 뒤척이던 책갈피
참말로 새기고 푼 가슴에다
호호불어 적고 싶던 말
멀리 멀리 떠나, 회오리바람이라도 되어
숱한 그물에 걸렸거늘
한 발짝 뛰어 넘을 수도 없는
세월도 오롯이 삭이며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어디다 두고 온 듯, 버릴 수 없는 내가
손가락 가지가지 마다 맑디맑은 눈물을
오늘 따라 빡빡 문지르고 있다
세상의 꽃들이
봄밤에 적고 싶던 말처럼
◇백숙용= 대구문학등단. 시집 ‘분홍의 방향’이 있음.
<해설> 세상의 꽃들이 봄밤에 적고 싶던 말들을 생각하며 시인은 지금 살 밖으로 나온 뼈, 즉 야성의 흔적인 손톱에, 발톱에 메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활짝 피어나는 온갖 꽃들 알에서 여인인 자신도 활짝 피어 어여뻐지고 싶은 심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인은 일시적이고 단순하게 화려하고 싶진 않아서 그런 꽃들의 후일담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 바퀴 계절의 수레를 돌아와 지금 핀 꽃들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나름의 삭풍과 살 에이는 추위를 견뎠을 것을 시인은 읽어낸다. 그러면서 직관 하나를 얻는데 그건 “한 발짝 뛰어 넘을 수도 없는 / 세월도 오롯이 삭이며 /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