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메니큐어
[좋은 시를 찾아서] 메니큐어
  • 승인 2023.04.0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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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숙용 시인

문득 어디 두고 온 걸 잊어버린 듯, 오늘은

내가 나를 두고 간다

한 밤중에 일어나 뒤척이던 책갈피

참말로 새기고 푼 가슴에다

호호불어 적고 싶던 말

멀리 멀리 떠나, 회오리바람이라도 되어

숱한 그물에 걸렸거늘

한 발짝 뛰어 넘을 수도 없는

세월도 오롯이 삭이며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어디다 두고 온 듯, 버릴 수 없는 내가

손가락 가지가지 마다 맑디맑은 눈물을

오늘 따라 빡빡 문지르고 있다

세상의 꽃들이

봄밤에 적고 싶던 말처럼

◇백숙용= 대구문학등단. 시집 ‘분홍의 방향’이 있음.

<해설> 세상의 꽃들이 봄밤에 적고 싶던 말들을 생각하며 시인은 지금 살 밖으로 나온 뼈, 즉 야성의 흔적인 손톱에, 발톱에 메니큐어를 바르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활짝 피어나는 온갖 꽃들 알에서 여인인 자신도 활짝 피어 어여뻐지고 싶은 심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인은 일시적이고 단순하게 화려하고 싶진 않아서 그런 꽃들의 후일담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 바퀴 계절의 수레를 돌아와 지금 핀 꽃들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나름의 삭풍과 살 에이는 추위를 견뎠을 것을 시인은 읽어낸다. 그러면서 직관 하나를 얻는데 그건 “한 발짝 뛰어 넘을 수도 없는 / 세월도 오롯이 삭이며 / 순응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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