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숭숭한 봄, 너의 잰걸음에 놀라
안부를 얼른 봉인한다
크기와 무게가 바닥나기 전
뒤꿈치 들고 계단을 오르듯 숨을 고른다
없는 비밀을 민들레 꽃잎에 쓴다
노랑이 노랑에 그려내는
엇비슷한 밑줄의 감정들
순간들은 모두
어디든 척척 붙고 싶어 하는
뒷면이 찰진 나이 이니까
높거나 낮거나 모서리라도 좋다
밟아도 피어나는 후렴구처럼
직선이 곡선으로 바뀌는
하염없는 기다림이다
◇김건희= 2018년 미당문학 신인작품상 수상, 형상시학회, 대구시인협회, 문인협회 회원, 시집‘두근두근 캥거루’.
<해설> 젊은 날의 기억들은 그 기억만으로도 찰지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건망증들은 기록의 행위들을 동반하게 된다. 그럴 때 마다 잊지 않고 메모를 해두는 것이 포스트잇 아닌가. “순간들은 모두/ 어디든 척척 붙고 싶어 하는 / 뒷면이 찰진 나이 이니까” 뒷면이 찰지다는 것은 포스트잇의 특성관찰의 예리함을 보여주는 문장인 동시에 시인 자신의 삶에서도 행하는 일의 행위에 있어서도 뒤끝의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소한 일상의 소품하나를 두고 차츰 깊은 사유로 번져가는 김건희 시인의 시인은, 없는 비밀도 만들어, 그것도 노란 민들레꽃으로 피울 줄 안다는 점에서 언어를 구부리고 조탁하는 탁월한 능력을 이 시에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