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달을 품다
[좋은 시를 찾아서] 달을 품다
  • 승인 2023.05.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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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서 시인

불면의 밤 건너다 훔쳐보았다

장독간에 놓아둔 자작나무 소반에 드러누운 이슬방울

그 위를 덮치는 달빛

마른 침 삼키며 엉겨 붙은 가랑이를 상상하다가

괜스레 붉어졌다

싱숭생숭 달뜬 밤, 댓바람 한 줄기

뜨거운 피 식히는 동안

눈물보다 엷은 동그라미가

탐스런 달빛을 잉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깨어 나올 듯, 위태로운 팽창 속

달무리에 둘러싸인 핏덩일

불면의 밤이 받아내고 있었다

맑디맑은 저 방울 속

성聖과 속俗 경계는 어디쯤일까

물방울 우주 깨고 나왔을

내 마음 빙벽에 붉은 달 찍힌다

◇조은서= 포항시 북구 産, 2000년 신라문화제 시부문 대상.

<해설> 시 제목이 ‘달을 품다’여서, 어떻게 달을 품나 궁금했더니. 장독간에 놓아 둔 소반 그 위에 내린 이슬이 뭉쳐 방울진 그 물방울을 통해 달을 품는 시인의 예리한 촉수는 압권이다. 결국 이러한 관찰이 세상을 오감으로 느끼는 시인의 기본 자질인 것이며, 무한히 다음의 시가 독자들은 기다려지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시인이 느끼고 그려서 혹은 말로 귓가에 속삭여 줄 때 독자들의 감동은 배가 된다. 이런 점에서 조은서 시인은 좋은 시인이다. 그 물방울을 그냥 두지 않고 성聖과 속俗 경계를 둥근 물방울에서 찾고 있으니, 어머니 뱃속 물방울 우주를 깨고나왔을, 내 마음의 빙벽에 뜬 달은 잠시 머물러 붉은 발자국을 찍고 갈 수밖에.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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