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세사기, 금액 너머 절박함 바라봐야
[기자수첩] 전세사기, 금액 너머 절박함 바라봐야
  • 승인 2023.06.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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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혁진
사회부
최근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터져 나오고 있다. 수도권을 비롯해 대구·부산·안동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사기 피의자가 적발됐다. 지난해 7월부터 대구경찰청과 경북경찰청이 벌인 전세사기 특별단속에서만 100건이 넘는 수사가 이뤄졌다. 인천·구리 지역에서 적발된 이들 중 일부는 범죄집단조직죄를 적용받아 검찰에 넘겨졌다.

그 사이 인천에선 처지를 비관한 극단적 선택이 이어졌다. 서울에선 빚을 갚기 위한 과로가 죽음으로 이어졌다. 알려진 숫자만 다섯이다. 죽지 않은 피해자는 그 숫자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남아있는 피해자들은 죽지 않았을 뿐 죽을 만큼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빌라에선 신탁 계약 문제가 불거지며 17가구가 1억원 안팎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곳의 한 피해자는 인터뷰 중간중간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심정이 이해된다며 한숨지었다. 사업이 부도난 후 마지막 재기를 노리며 입주했던 집에서 마저 쫓겨나게 생긴 탓이다. 물조차 마시기 힘든 무기력함 속에서 낙관적인 생각이 들 리가 없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불어나는 빚과 지독한 주거 불안은 중년을 우울로 밀어 넣었다.

누군가는 어린 자녀와 노년의 부모 사이에서 몇 배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가족들이 받을 상처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우린 언제쯤 고층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냐”고 묻는 어린아이에게, 또 나고 자란 집을 자랑스레 여기는 아이에게 빈털터리 신세로 집을 떠나야 한다는 심정을 전하기는 무척 고통스럽다. 괜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밤잠 못 이룰 부모님을 생각하면 더더욱 심란하다.

청년들은 보증금과 함께 미래까지 빼앗겼다고 입을 모은다. 청년들이 잃게 생긴 보증금은 결혼자금이나 사업자금으로 쓰일 돈이었다. 분양받은 아파트의 잔금 납부에 활용하거나 육아 비용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보증금 1억원은 1억원의 가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의 희망이자 현재의 생존이 달린 종잣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피해로 인해 분양받은 아파트 잔금을 치를 길이 사라져 이미 낸 돈까지 잃을 처지에 놓이거나, 결혼을 포기하고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등 추가적인 유무형의 피해도 뒤따른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1억원이다. 표면적인 피해 금액은 1억원에 그칠지 모르나, 그 너머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1억원을 휠씬 넘어선다.

앞으로 전국에서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하반기부터 전세가 하락으로 인한 역전세 사고 역시 급증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지원책은 요건을 충족하는 일부의 사기 피해자에게만 국한되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실효성있는 실질적 지원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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